볼썽 사나운 국대의 품격[양승남의 스포츠톡톡]
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기혁. 대한축구협회 제공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뒤 전역모를 쓴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박승수. 박승수 SNS결과는 찬란했으나 뒷맛은 쓰다. 한국 축구가 2026년을 보내며 다시 한번 ‘국가대표’라는 이름의 무게를 생각하게 한다.남자 축구대표팀이 3일 숙적...


결과는 찬란했으나 뒷맛은 쓰다. 한국 축구가 2026년을 보내며 다시 한번 ‘국가대표’라는 이름의 무게를 생각하게 한다.
남자 축구대표팀이 3일 숙적 일본을 꺾고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회 4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한일전 승리와 정상 등극이라는 값진 결실에도 불구하고, 대회가 끝난 뒤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 있다. 우승 직후 쏟아져 나온 일부 선수들의 경솔한 언행이 메달의 순도를 스스로 떨어뜨린 탓이다.
금메달을 확정한 뒤 믹스트존에서 나온 발언들은 귀를 의심케 했다. 대표팀 주장 이기혁은 “군대 안 간다”며 환호했고, 결승골을 도운 양민혁은 “군 면제만 보고 뛰었다”고 솔직함을 넘어선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막내 박승수는 예비역 군모를 삐딱하게 눌러쓴 채 세리머니 사진을 남겨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국위선양의 대가로 주어지는 체육요원 편입(병역 특례) 혜택이 언제부터 국가를 대표해 뛴 젊은 선수들의 ‘유일한 목적’이자 안도 섞인 전리품으로 전락했는지,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당장 축구팬과 여론 일각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아시안게임 병역 특례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터져 나온다.
이러한 태도 논란은 비단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한국 축구 전체를 관통하는 무거운 화두다. 지난 2일 A매치 베네수엘라전(0-0 무) 직후, 수비의 핵 김민재는 “대표팀에 오면 머리 박고 뛰어야 한다”며 전방 압박과 수비 가담을 게을리한 동료들의 안일한 태도를 이례적으로 직격했다.
어느 순간부터 대표팀 유니폼이 책임과 희생의 상징이 아닌 개인의 커리어와 가치를 증명하는 ‘쇼케이스 무대’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올 한 해 한국 축구는 끝없는 격랑 속에 휘말렸다.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 실패 이후 대한축구협회의 졸속 행정과 홍명보 전 감독의 지도력을 향해 여론의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시스템의 부재와 감독의 전술 실패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했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정작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들의 경기력과 정신력에 대한 엄정한 평가는 협회와 감독을 향한 분노 뒤로 슬그머니 숨어버렸다. 무기력했던 남아공전 졸전 등 본선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투지 결여와 사명감 부족은 행정 난맥상의 그늘 아래 묻혔을 뿐,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다는 것의 무게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대표는 선택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 동시에, 국민의 성원에 보답해야 할 무거운 공적 책무를 지닌다.
물론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과도한 희생정신만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선수도 직업인이고 자신의 미래를 고민할 권리가 있다. 병역 문제를 현실적인 동기로 생각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선수를 비난할 수도 없다.
다만 그 동기가 국가대표로서의 책임보다 앞선 것처럼 비칠 때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한축구협회의 역할 범위도 넓어져야 한다. 어린 선수들이 프로에 데뷔하고 유럽으로 진출하는 속도가 빨라진 만큼, 국가대표로서 지녀야 할 태도와 기본적 소양 교육 시스템을 체계화해야 한다. 국가대표의 실력은 경기장에서 드러나지만 국가대표의 품격은 경기장 밖에서도 드러난다. 기량뿐 아니라 심신이 건강한 진짜 국가대표를 길러내는 것이 협회의 본령이다.
2026년 월드컵의 쓰라린 실패와 이번 아시안게임의 낯부끄러운 논란은 한국 축구계 전체에 뼈아픈 경종을 울린다. 선수와 지도자, 협회까지 축구계 모든 구성원이 ‘우리는 왜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다시 서야 할 때다.
양승남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스포츠경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