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한국 골프의 미래'로 불린 12세 소년…5년 뒤 허정구배 정상에 선 손제이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골프왕'에 출연해 '한국 골프의 미래 손제이(12)'로 소개됐던 손제이의 어린 시절 모습(왼쪽)과 허정구배 우승 뒤 소감을 말하는 현재 모습. 골프 신동으로 불리던 소년은 5년 뒤 한국 남자 아마추어 정상에 섰다.손제이가 허정구배 우승 후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회장에게 트로피를 받았다.TV 화면 속...


TV 화면 속에는 검은 모자챙을 살짝 고쳐 쓰는 12세 소년이 있었습니다. 화면에는 "한국 골프의 미래 손제이(12)"라는 자막이 큼지막하게 붙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골프 신동'으로 불리던 소년이었습니다.
5년이 흘렀습니다. 그 소년은 국가대표 모자를 쓰고 우승 화환을 목에 건 채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이번에는 방송 자막이 아니라 한국 남자 아마추어 골프를 대표하는 내셔널 타이틀이 그의 이름 앞에 붙었습니다.
11일 경기 성남 남서울CC에서 끝난 허정구배 제72회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한 2010년생 손제이(동래고부설방통고1)입니다.
마지막 홀까지 끝나지 않았던 승부
손제이는 최종 4라운드에서 3언더파 68타를 쳐 최종 합계 12언더파 272타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홀에서 차분하게 파를 지켜 이 홀에서 보기를 한 안성현을 1타차로 제쳤습니다.
손제이는 1라운드부터 마지막 라운드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완성했습니다. 임실N치즈배와 송암배에 이은 올 시즌 KGA 세 번째 우승입니다. 지난해 블루원배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에 이어 개인 두 번째 내셔널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파 퍼트에는 1년 전 기억이 겹쳐 있었습니다.
4퍼트와 3퍼트, 1년 동안 남았던 기억
손제이는 지난해 허정구배 최종 라운드에서 6번 홀까지 선두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7번 홀에서 4퍼트, 이어 8번 홀에서 3퍼트를 하면서 순식간에 흐름을 놓쳤습니다. 결국 6위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올해 대회 첫날 그는 당시를 떠올리면서 "그때 임팩트가 너무 컸다"라고 했습니다. "골프는 흐름의 게임"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한두 번의 실수가 다음 샷과 다음 홀까지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경험을 몸으로 배운 셈입니다.
그렇다고 1년 사이 퍼트 고민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손제이는 올 시즌 한때 퍼트 난조가 심해지면서 임팩트 순간 손이 흔들리는 어려움마저 겪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해결책으로 택한 것은 '집게 그립'이었습니다. 매일경제 인터뷰에서는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처럼 퍼트 성공률을 높이고 싶어 그립을 바꿨고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1년 전 자신을 무너뜨렸던 것이 퍼트였다면, 1년 뒤 우승을 확정한 것도 퍼트였습니다.
성장이란 잘하던 것을 더 잘하게 되는 과정만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을 흔들었던 약점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돌아와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손제이에게 이번 허정구배 마지막 파 퍼트가 특별했던 이유입니다.

7세에 잡은 골프채, 초등학생 때만 37승
손제이의 골프 인생은 일찍 시작됐습니다.
7세 무렵 아버지 손종인 씨의 권유로 처음 골프채를 잡았습니다. 부산 가동초 시절부터 이름을 알렸고 초등학생 때 전국 주니어 대회에서 무려 37승을 거뒀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이 하루 종일 골프 연습으로만 채워졌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연습장에서 캐치볼과 족구도 함께 했습니다. 어린 아들이 골프에 싫증을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부산 기장 집 주변의 해운대CC, 동부산CC, 아시아드CC 등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코스를 경험한 것도 어린 손제이에게 좋은 자산이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너무 잘했던 선수에게 '신동'이라는 이름표는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부담되기도 합니다. 유소년 시절 압도적인 선수 가운데 성인 무대까지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손제이는 지난해 동아중 3학년 신분으로 KGA 주관 대회에서 4승을 거뒀습니다. 그 성적을 바탕으로 올해 처음 국가대표가 됐습니다. 국가대표 6명 가운데 가장 어린 선수이면서 KGA 남자 랭킹 1위까지 올라섰습니다.
허정구배 첫날에는 "몇 년이 되도록 1위를 지키고 싶다"라며 웃었습니다. 이제 '골프 신동'이 아니라 한국 남자 아마추어 골프의 기준이 되는 자리를 오래 지키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180㎝·65㎏에 280야드…'정석'보다 자기만의 스윙
체격만 보면 장타자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키 180㎝에 몸무게 65㎏ 정도의 마른 체격이지만 평균 드라이버 거리는 약 280야드에 이릅니다.
스윙도 전형적인 교과서형은 아닙니다. 백스윙이 낮고 다운스윙에서 클럽 헤드가 많이 눕는 독특한 형태입니다.
김형태 국가대표 감독은 정석적인 스윙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 온 손제이만의 동작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무엇보다 클럽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 드로우와 페이드는 물론 티샷의 발사각까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손제이가 좋아하는 선수는 저스틴 토마스입니다. 위기에서 물러서기보다 공격적으로 경쟁하는 모습이 좋다고 했습니다. 정신력과 카리스마에서는 타이거 우즈를 존경합니다.
자신의 강점 역시 두려워하지 않는 공격적인 플레이와 멘털이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나서는 순간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스스로 진단했습니다.
장점과 약점을 모두 알고 있는 셈입니다.
"프로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말로 끝나지 않은 꿈
지난해 가을 손제이가 밝힌 목표는 꽤 대담했습니다.
"내년에는 프로 대회에서 꼭 정상에 서고 싶습니다."
특히 한국오픈에서 우승해 디 오픈으로 향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말만 앞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올해 4월 KPGA 투어 시즌 개막전 DB손해보험 프로미 오픈에서 프로 선수들과 나흘 동안 경쟁해 최종 15언더파 273타, 공동 5위에 올랐습니다. 아직 고교 1학년인 아마추어가 국내 정상급 프로들과 같은 리더보드 상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다음 목표는 세계
손제이의 다음 무대는 더 넓어집니다.
미국 시카고 메디나CC에서 열리는 주니어 프레지던츠컵 인터내셔널팀에 한국 선수로 선발됐습니다. 이어 10월 29일부터 뉴질랜드 테아라이 링크스에서 열리는 아시아퍼시픽 아마추어 챔피언십(AAC)에도 도전합니다. AAC 우승자에게는 2027 마스터스 출전권과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리는 디 오픈 출전권이 주어집니다.
손제이가 오래전부터 그려온 꿈도 결국 그곳을 향합니다. 마스터스의 그린 재킷과 디 오픈, 그리고 PGA 투어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것은 '골프 신동'이 이야기하는 큰 꿈처럼 들렸을지 모릅니다. 이제는 프로 대회 공동 5위, KGA 남자 랭킹 1위, 국가대표, 두 개의 내셔널 타이틀이라는 구체적인 기록들이 꿈 뒤에 하나씩 붙기 시작했습니다.
우승 뒤 손제이는 "마지막 홀까지 우승을 예측할 수 없었다. 보기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집중하면서 열심히 했다"고 돌아봤습니다. 그러면서 "허정구배 한국아마추어는 아마추어 대회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회라고 생각한다. 우승해서 정말 행복하다"며 "앞으로 더 노력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겠다"라고 했습니다.
골프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손제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습니다.
초등학생 때 37번이나 우승했던 소년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주니어 대회 우승 숫자를 더 늘리는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골프 신동 손제이'가 아니라 '골퍼 손제이'로 기억되는 것.
TV 화면에 등장했던 "한국 골프의 미래 손제이(12)"라는 자막은 당시에는 기대였습니다. 5년 뒤 허정구배 18번 홀에서 넣은 마지막 파 퍼트는 그 기대가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장면이었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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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테니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