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43) 내전 멈춘 '검은 예수'…축구 전설 디디에 드로그바
프리미어리그 호령한 코트디부아르 출신 골잡이…무릎 꿇은 호소로 임시 휴전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 주장 디디에 드로그바가 2010년 6월 2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스프루이트의 음봄벨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국제축구연맹(FIFA)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G조 북한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에 앞서 국가 연주를 듣고 있다. [E...
프리미어리그 호령한 코트디부아르 출신 골잡이…무릎 꿇은 호소로 임시 휴전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 주장 디디에 드로그바가 2010년 6월 2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스프루이트의 음봄벨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국제축구연맹(FIFA)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G조 북한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에 앞서 국가 연주를 듣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6/10/24/AKR20261006185400079_01_i_P4_20261024080120560.jpg?type=w860)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로그바는 스포츠 스타를 넘어 아프리카의 자부심이자 평화와 연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꼽힌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를 호령했던 전설의 골잡이였던 그는 압도적인 기량으로 아프리카 축구의 위상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은퇴 후 자선 사업가로 변신해 아프리카의 빈곤 퇴치와 보건 인프라 확충에 헌신하고 있다.
1978년 코트디부아르 최대 도시 아비장에서 태어난 드로그바는 유년 시절 극심한 가난을 피해 삼촌이 있는 프랑스로 이주했다.
20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프랑스 르망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특유의 탄력 넘치는 신체조건과 탁월한 골 결정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성장했다.
드로그바의 축구 경력은 2004년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첼시 유니폼을 입으면서 만개했다.
그는 첼시에서 뛰며 4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4번의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우승을 이끌었다. 2006~2007시즌과 2009~2010시즌에는 아프리카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첼시의 디디에 드로그바가 2012년 5월 1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4-3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 뒤 환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6/10/24/AKR20261006185400079_04_i_P4_20261024080120562.jpg?type=w860)
특히 2011~2012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극적인 동점 골과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며 팀에 사상 첫 우승컵을 안겼다.
두 차례나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국내 팬들로부터 '드록신'(드로그바와 신의 합성어)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의 축구 유망주들에게 완벽한 롤모델이 되었다.
2010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 축구 팬들에게도 드로그바는 매우 친숙하다. 현역 시절 첼시의 간판 공격수였던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산소탱크' 박지성과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은 물론 2010~2011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전 등 최고 무대에서 여러 차례 맞대결했다.
각각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축구 위상을 드높인 두 영웅의 불꽃 튀는 격돌은 당시 국내 축구 팬들의 밤잠을 설치게 한 명승부로 남아있다.
은퇴 후인 2024년 10월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레전드 올스타전 '아이콘 매치'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전 세계 전설적인 공격수들로 구성된 'FC 스피어' 팀의 창끝을 맡은 그는 6만여 명의 한국 팬들 앞에서 여전한 존재감을 뽐냈다. 경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한국팬들에게 인사하는 디디에 드로그바 2024년 10월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4 넥슨 아이콘 매치'를 앞두고 열린 이벤트 경기에서 세계 축구 전설의 공격수들로 구성된 FC 스피어에 참여한 디디에 드로그바가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6/10/24/AKR20261006185400079_03_i_P4_20261024080120580.jpg?type=w860)
하지만 드로그바의 이름이 전 세계인의 가슴에 가장 깊이 각인된 것은 그라운드 위의 화려한 활약상보다 조국의 평화를 위한 노력 때문이다.
2005년 10월 8일, 코트디부아르는 수단과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며 사상 최초로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정부군과 반군으로 나뉘어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 끔찍한 제1차 내전을 수년째 겪고 있었다.
본선 진출 확정으로 열광의 도가니가 된 라커룸에서 드로그바는 동료 선수들과 함께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코트디부아르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코트디부아르의 모든 부족이 월드컵 진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단 1주일 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선거를 치릅시다"고 호소했다.
그의 진심 어린 호소는 기적을 만들었다. 드로그바의 메시지가 전파를 탄 후 일주일 만에 정부군과 반군은 거짓말처럼 교전을 멈추고 임시 휴전에 합의했다.
'축구공이 총탄을 멈췄다'는 세계 언론의 찬사가 쏟아졌다. 조국을 구한 평화의 상징으로 우뚝 선 그에게는 '검은 예수'라는 칭호가 따라붙었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친 후에도 드로그바의 시선은 늘 아프리카의 가장 소외된 곳을 향해 있다.
그는 2007년 자신의 이름을 딴 '디디에 드로그바 재단'을 설립해 아프리카의 고질적인 의료 및 교육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섰다.
![코트디부아르 축구 전설 디디에 드로그바가 2021년 10월 18일 스위스 제네바 세계보건기구(WHO) 본부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및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다년 파트너십 출범식'에서 WHO 스포츠·건강 친선대사로 임명된 뒤 연설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6/10/24/AKR20261006185400079_02_i_P4_20261024080120583.jpg?type=w860)
과감히 사재를 털어 고향인 아비장에 취약 계층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대형 종합병원을 건립했다. 아프리카 전역에 보육원과 학교를 세워 어린이들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21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스포츠 및 건강 친선 대사로 임명되어 아프리카는 물론 전 세계인의 건강 증진을 위한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질병 퇴치와 보건 인프라 확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국제 구호 단체와 협력하며 진정한 의미의 문화 외교를 실천하고 있다.
축구화 끈을 푼 지 오래지만, 아프리카를 향한 드로그바의 헌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조국의 분열을 막아선 위대한 주장이자 수많은 아프리카 어린이의 생명과 미래를 구하는 자선 사업가. 그라운드 안팎에서 보여준 그의 불굴의 의지와 인류애는 아프리카를 넘어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