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업체 투수, 도요타車 야수, 일본통운 타자… 기본 훈련 ‘탄탄’, 기업 지원 ‘빵빵’, 韓 프로도 ‘쩔쩔’

제지업체 투수, 도요타車 야수, 일본통운 타자… 기본 훈련 ‘탄탄’, 기업 지원 ‘빵빵’, 韓 프로도 ‘쩔쩔’

실업 구단, 구장·웨이트 시설 구비도시대항전 등 연 70~80경기 치러NPB 드래프트·MLB 진출 이어져고교 야구부 3746개·부원 12만명학교 부활동, 지역·실업 무대 연결프로 안 가도 사회인 야구 일상화일본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야구사에 굴욕과 영광의 기록을 동시에 안겨줬다. 한국 대표팀은 27...

실업 구단, 구장·웨이트 시설 구비 도시대항전 등 연 70~80경기 치러 NPB 드래프트·MLB 진출 이어져

고교 야구부 3746개·부원 12만명 학교 부활동, 지역·실업 무대 연결 프로 안 가도 사회인 야구 일상화일본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야구사에 굴욕과 영광의 기록을 동시에 안겨줬다. 한국 대표팀은 27일 결승전에서 일본을 무너뜨리며 5회 연속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했지만, 같은 상대에게 이틀전 예선에서는 0-5의 완패를 당했다. ‘총연봉 54억원’의 프로 엘리트 선수단이 전원 사회인 선수로 구성된 일본을 상대로 단 1점도 뺏지 못하고 패배한 ‘굴욕’. 일본의 ‘회사원 야구’는 어떻게 한국 프로 군단과 맞설 힘을 갖추게 된 것일까.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야구 본선 슈퍼라운드가 열린 지난 25일 한국과 맞붙은 일본의 선발 투수 히구치 신이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도요하시 연합뉴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야구 본선 슈퍼라운드가 열린 지난 25일 한국과 맞붙은 일본의 선발 투수 히구치 신이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도요하시 연합뉴스

25일 슈퍼라운드에서 한국의 스타 선수를 7이닝 무실점으로 꽁꽁 틀어막으며 악몽을 안긴 주인공은 좌완 히구치 신이었다. 히구치는 프로 소속이 아니다. 일본 제지업체 ‘오지’의 시설부 직원이 그의 신분이다. ‘회사 시설부 직원’인 히구치처럼 그의 대표팀 동료들도 도요타자동차, ENEOS, 일본통운 등에 소속된 회사원 신분으로 일과 운동을 병행한다.

●시즌 주 5~6일 연습… 사무·운동 병행

일본의 ‘사회인 야구’는 광대한 저변을 자랑한다. 79년 역사의 도요타자동차 야구팀을 보면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기업이 엘리트 선수를 직원으로 채용해 월급을 주고 시즌 중 주 5~6일 훈련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업무를 병행하며 비시즌에는 출근을 해야 하는 회사원 신분이지만, 시즌에 돌입하면 야구에 상당한 시간을 쏟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딴 일본 선수단이 27일 시상대에서 관중을 향해 인사하는 모습. 도요하시 연합뉴스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딴 일본 선수단이 27일 시상대에서 관중을 향해 인사하는 모습. 도요하시 연합뉴스

회사 지원도 웬만한 프로팀 못지않다. 도요타스포츠센터에는 전용 야구장과 실내훈련장, 웨이트 시설이 갖춰져 있다. 타격 데이터를 분석하는 인력과 컨디셔닝 지원도 붙는다. 사회인 야구의 꽃인 ‘도시대항야구’를 앞두고는 실내훈련장에 결전지 도쿄돔의 잔디 경계까지 재현해 훈련한다. 신분은 ‘회사원’이지만 야구에서는 ‘엘리트 선수’ 대접을 받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회인 야구를 프로선수가 되지 못한 ‘실패자들의 무대’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일본에서는 더 큰 도약을 위한 ‘꿈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실제 사회인 야구를 거쳐 프로의 간판선수로 성장한 사례도 많다. 한신 타이거스의 지카모토 고지는 대학 시절 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뒤 에너지 기업 ‘오사카가스’ 야구단에 입단했다. 2018년 도시대항야구에서 타율 0.524, 4도루로 팀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에 올라 그해 한신의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사회인 야구의 꿈은 ‘아메리칸 드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박찬호와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성공 신화’를 쓴 노모 히데오는 신일본제철에서 뛰던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일본의 은메달 획득에 기여한 뒤 이듬해 드래프트 1순위로 킨테츠 버팔로즈에 입단했다. 사회인 야구에서 자국 프로리그를 거친 그는 메이저리그 데뷔무대에서 신인상까지 받았다.

일본 야구의 저력을 설명하는 또다른 키워드는 ‘부카츠’(部活·학교 스포츠 활동)다. 사회인 야구가 프로리그를 뒷받침한다면 일본의 학교야구는 부카츠로 시작해 대학과 기업팀으로 이어지며 한국과는 수준이 다른 ‘뎁스’를 만든다.

25일 오후(현지시간)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야구 슈퍼라운드 1차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0-5로 일본에 패한 한국 선수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9.25. 뉴시스
25일 오후(현지시간)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야구 슈퍼라운드 1차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0-5로 일본에 패한 한국 선수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9.25. 뉴시스

●고시엔 치열… 지역·회사 무대 확대

28일 일본고등학교야구연맹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일본의 경식야구(硬式野球) 가맹 고교는 3746개, 부원은 12만 4116명이다. 고교 졸업 뒤 모두가 프로에 가는 것은 아니다. 대학으로, 기업팀으로, 지역 클럽으로 진로가 갈린다. 학교에서 시작한 야구가 졸업과 함께 끊기지 않고 성인 무대로 이어지는 구조가 실업과 프로 양쪽의 선수층을 두텁게 만든다.

특히 고교 야구부는 전국대회인 ‘고시엔’을 정점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선수를 길러낸다. 10대 선수들의 땀과 눈물, 노력을 대변하는 고시엔은 프로와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하며 일본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야구연맹은 내년부터 도시대항야구 본선 참가팀을 32개에서 36개로 늘릴 계획이다. 56년 만의 확대다. 저출산으로 선수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지역과 기업을 기반으로 야구를 이어갈 무대를 넓히려는 움직임이다.

25일 오후(현지시간)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야구 슈퍼라운드 1차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6회말 2사 1,2루에서 일본 야노의 안타에 홈인한 쿠마다가 덕아웃으로 들어가며 환영받고 있다. 2026.09.25. 뉴시스
25일 오후(현지시간)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야구 슈퍼라운드 1차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 6회말 2사 1,2루에서 일본 야노의 안타에 홈인한 쿠마다가 덕아웃으로 들어가며 환영받고 있다. 2026.09.25. 뉴시스

이는 야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농구·배구·육상·체조 등에서도 학교 부카츠가 넓은 선수 저변과 초기 발굴의 무대가 되고, 이후 대학·지역 클럽·실업팀과 종목별 육성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일본 정부도 학교 스포츠와 지역·경기단체의 연계를 국제 경쟁력 강화의 한 축으로 명시하고 있다. 학교 스포츠가 선수층을 넓히고, 대학·실업·프로와 경기단체의 전문 육성 체계가 그 위를 이어받는 방식이다.

일본 야구는 자국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막혀 은메달에 그쳤다. 하지만 대회에서 보여준 경쟁력은 몇몇 선수의 반짝 활약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12만명이 넘는 고교 선수에서 대학과 기업팀, 프로로 이어지는 두터운 선수층이 바로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로 상징되는 ‘야구 강국 일본’을 만든 저력인 셈이다.

출처: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