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곽빈급 아니면 없다” 충격 경고…너무 보호받은 한국 투수의 민낯

[아시안게임]“곽빈급 아니면 없다” 충격 경고…너무 보호받은 한국 투수의 민낯

출처:연합뉴스(MHN 정철우 기자) 92개의 공을 던졌다. 휴식은 단 하루였다. 그리고 다시 선발 마운드에 올랐다. 한국 프로야구라면 등판 예고가 나오는 순간부터 논란이 시작됐을 법한 일정이다. 그러나 일본의 히구치 신은 실제로 그렇게 공을 던졌다. 더 놀라운 것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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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N 정철우 기자) 92개의 공을 던졌다. 휴식은 단 하루였다. 그리고 다시 선발 마운드에 올랐다. 한국 프로야구라면 등판 예고가 나오는 순간부터 논란이 시작됐을 법한 일정이다. 그러나 일본의 히구치 신은 실제로 그렇게 공을 던졌다. 더 놀라운 것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한국과 슈퍼라운드에서 7이닝 92구 무실점으로 승리를 이끈 뒤 하루만 쉬고 다시 결승전 선발로 나서 3회까지 1실점으로 버텼다.

물론 정상적인 컨디션은 아니었다. 앞선 경기보다 구속이 다소 떨어졌고 체력적인 부담도 느껴졌다. 92구를 던지고 하루만 쉰 투수에게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럼에도 히구치는 한국 타선을 상대로 경기 초반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본의 기용이 옳았느냐, 히구치가 혹사를 당했느냐가 아니다. 한국 야구가 그 장면을 보며 전혀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투수들을 이보다 훨씬 편안한 환경에서 키우고 있는데 왜 국제무대에서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투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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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KBO리그에서 히구치와 같은 등판 일정을 적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선발투수가 90개가 넘는 공을 던진 뒤 하루를 쉬고 다시 선발로 나선다면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향해 엄청난 비판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4일 휴식 후 선발 등판도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불펜 투수의 3연투조차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수 보호가 야구의 중요한 가치가 된 결과다.

선수 보호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한국 야구는 과거 분명히 너무 많은 공을 던졌다.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에이스에게 의존했고 어린 투수들에게도 과도한 투구를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팔꿈치와 어깨를 다쳐 사라진 재능도 적지 않았다.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관리가 강화된 것은 당연한 변화다.

그러나 보호가 강화된 만큼 투수의 수준도 높아졌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걱정이 나오고 있다. 철저하게 관리받으며 성장한 투수들이 정작 국제대회에 나가면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국제무대에서 확실하게 계산할 수 있는 투수는 손에 꼽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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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A팀 투수 코치는 문제의 출발점을 훈련량에서 찾았다.

그는 “요즘은 스프링캠프에서도 1000개 안팎의 공을 던지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캠프가 실전 위주로 구성되면서 훈련 투구량 자체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투수는 공을 던지면서 감각을 익혀야 하고, 공을 던질 수 있는 체력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구종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도 충분한 반복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과정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장의 고민은 단순히 ‘많이 던져야 한다’는 옛날식 주장과는 차이가 있다. 무작정 수천 개의 공을 던지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기에서 던지는 공만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정작 투수를 만드는 데 필요한 ‘훈련으로서의 투구’까지 함께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코치는 “지금은 무조건 보호가 우선되는 시대다. 투수 코치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이상적이라고 불리는 투구 수를 관리하는 것이 주요 임무처럼 돼 버렸다”며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훈련량이 적다 보니 짧은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털어놓았다.

투수는 이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투구 동작을 아무리 자세하게 분석하고 좋은 메커니즘을 설명해도 몸에 익히려면 반복이 필요하다. 새로운 변화구 하나를 장착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손가락 감각을 찾고 릴리스 포인트를 일정하게 만들고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려면 결국 공을 던져야 한다. 마운드에서 80개, 100개를 던지고도 자신의 투구 동작을 유지할 수 있는 힘 역시 웨이트트레이닝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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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이 줄어들면서 한국 투수 육성은 묘한 역설에 빠졌다. 부상을 막기 위한 장치는 과거보다 훨씬 촘촘해졌지만 정작 국가대표팀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투수층은 두꺼워지지 않고 있다. 150㎞를 던지는 투수는 예전보다 쉽게 발견되지만 국제대회에서 스트라이크를 넣고 타자의 약점을 공략하며 위기에서도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평가다.

이번 아시안게임도 그 현실을 외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곽빈처럼 국제무대에서도 자신의 구위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특급 투수는 존재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표팀 엔트리를 채울 정도의 성적과 구위를 갖춘 투수는 있어도 한일전이나 대만전처럼 압박이 큰 경기에서 확실한 카드로 내밀 수 있는 투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면 선택지가 급격히 좁아진다.

A팀 투수 코치는 이 부분을 가장 우려했다. 그는 “곽빈 같은 특급 투수가 아니라면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통할 투수를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흐름이 계속되면 이런 현상은 점점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히구치의 결승전 등판이 그래서 더욱 묘한 장면으로 남는다. 한국 야구에 그의 일정을 그대로 적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92구를 던진 투수를 하루 쉬게 한 뒤 다시 선발로 내는 방식은 부상 위험과 선수의 상태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극단적인 선택이다. 그것을 강한 투수를 만드는 모범 답안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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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은 히구치와 비슷한 수준은커녕 그 근처에도 가지 않는 관리 속에서 투수들을 키우고 있다.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고 투구 수를 관리하며 연투를 피한다. 그런데 그렇게 보호받으며 성장한 투수 가운데 정작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혀 놓으면 믿고 공을 맡길 선수가 많지 않다면 다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얼마나 덜 던지게 할 것인가’만큼 ‘얼마나 제대로 던지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한국 투수들은 어쩌면 너무 따뜻한 온실에서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도도 맞춰주고 물도 정해진 양만큼 준다. 바람이 강하면 밖에 내놓지 않는다. 화초를 살려두는 데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 투수가 서야 할 곳은 온실이 아니다. 시즌 막판 순위 싸움, 포스트시즌, 그리고 한일전처럼 한 번의 실수가 승부를 갈라놓는 거친 마운드다.

선수 보호와 투수 육성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어서는 안 된다. 다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도 필요한 훈련은 충분히 시켜야 한다. 공을 던질 수 있는 몸을 만들고, 반복을 통해 투구 동작을 완성하고, 많은 공을 던진 뒤에도 자신의 메커니즘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관리의 목적은 투수를 덜 던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더 강하게, 필요할 때 제대로 던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히구치는 92구를 던지고 하루를 쉬었다. 구속은 떨어졌고 체력적인 부담도 드러났다. 그래도 다시 한국을 상대로 3회까지 1실점으로 버텼다. 반면 한국 야구는 훨씬 넉넉한 휴식과 관리 속에서도 대표팀에 데려갈 투수를 고를 때마다 고민이 깊어진다.

이 차이를 단순히 일본은 혹사를 시키고 한국은 선수를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정리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정말 따져봐야 할 것은 그 과정에서 어떤 투수를 만들어냈느냐다.

보호받는 투수는 많아졌다. 그런데 국제무대에서 믿고 맡길 투수는 얼마나 늘었는가.

한국 야구가 답해야 할 질문은 이제 투구 수가 아니라 그 지점에 있다.

출처: MHN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