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투수, 보호 필요하지만 과잉 피해야?...92구 하루 휴식 후 선발, 일본 야구가 KBO에 던진 묵직한 메시지
출처:연합뉴스(MHN 정철우 기자) 한국 프로야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선발투수가 92개의 공을 던졌다. 그리고 딱 하루를 쉬었다. 이틀 뒤 다시 선발 마운드에 오른다. 그것도 시즌의 운명이 걸린 결승전이다. 아마 구단과 감독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을 것이다. ‘혹사’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등장했을...

(MHN 정철우 기자) 한국 프로야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선발투수가 92개의 공을 던졌다. 그리고 딱 하루를 쉬었다. 이틀 뒤 다시 선발 마운드에 오른다. 그것도 시즌의 운명이 걸린 결승전이다. 아마 구단과 감독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을 것이다. ‘혹사’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선수 보호를 무시한 무리한 기용이라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일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실제로 벌어진다.
일본은 27일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리는 한국과 야구 결승전 선발로 좌완 히구치 신을 예고했다. 히구치는 불과 이틀 전인 25일 한국과 슈퍼라운드 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92개의 공을 던졌다. 4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 한국 타선을 완벽하게 묶으며 일본의 5-0 승리를 이끌었다. 그런데 하루만 쉬고 다시 한국을 상대한다.
이번 대회 히구치의 투구 일정을 처음부터 들여다보면 더욱 놀랍다. 21일 중국전에 선발로 나서 6이닝 동안 86개의 공을 던졌다. 사흘을 쉬고 25일 한국전에 나와 다시 92개를 던졌다. 5일 동안 178구다. 여기까지도 KBO리그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낯선 일정이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하루만 쉬고 다시 결승전 선발이다.
물론 이 선택을 무조건 옳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히구치의 몸 상태가 어떤지, 일본 대표팀이 몇 개 정도의 투구를 계획하고 있는지 외부에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실제로 일본이 히구치를 긴 이닝을 책임지는 전통적인 선발이 아니라 경기 초반 한국 타선을 상대하는 오프너 개념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짧은 휴식 뒤 많은 공을 던지는 것이 모든 투수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일 리 없다. 투수의 팔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선수 보호는 어떤 승부보다 우선돼야 한다.

그럼에도 히구치의 등판은 한국 야구에 꽤 묵직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우리는 투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보호라는 이름 아래 지나치게 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KBO리그에서 선발투수의 4일 휴식 등판은 이제 상당히 부담스러운 카드로 받아들여진다. 5인 선발 로테이션을 기준으로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 기본이다. 일정이 꼬여 4일 휴식 뒤 등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투구 수를 조절하거나 아예 로테이션을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불펜 역시 마찬가지다. 3연투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카드가 됐다. 앞선 경기에서 많은 공을 던진 투수에게 다음 날 휴식을 주는 것도 당연한 관리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야구가 과거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어낸 변화다. 한때는 선발과 불펜의 경계도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았고, 중요한 경기에서는 전날 던진 에이스가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일도 있었다. 어린 투수들에게까지 지나치게 많은 공을 요구했던 시대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투수가 부상으로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다. 그런 역사를 거치며 선수 보호라는 개념이 자리 잡은 것은 한국 야구의 분명한 진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보호와 과잉 보호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이냐다.

지금의 KBO리그에서는 4일 휴식 후 선발 등판이나 불펜의 3연투만 나와도 상당한 부담으로 받아들여진다. 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투수가 똑같은 몸을 가진 것도 아니고 모든 경기의 무게가 같은 것도 아니다. 투구 수와 회복 능력, 시즌 누적 이닝, 구종과 투구 메커니즘, 선수 개인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몇 개를 던졌으니 무조건 휴식’, ‘며칠밖에 쉬지 않았으니 무조건 불가’라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그것 역시 최선의 관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투수를 강하게 만드는 과정에는 충분한 휴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체력을 만들고 반복해서 공을 던지며 일정한 투구 메커니즘을 유지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훈련의 일부다.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가장 편안한 조건에서만 던지게 한다면 정작 한 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평소와 다른 부담을 견뎌야 할 때 준비가 돼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본의 히구치 기용을 단순히 ‘혹사냐 아니냐’라는 두 글자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일본 대표팀이 어떤 판단을 거쳐 하루 휴식 뒤 다시 선발로 내세웠는지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따져볼 문제다. 92구를 던진 투수를 하루만 쉬게 하고 다시 선발로 내는 것이 반드시 따라야 할 모델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한국 야구가 너무 오래 하나의 기준만을 정답처럼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돌아볼 계기는 될 수 있다.
특히 지금의 KBO리그에는 더 현실적인 질문이 남아 있다.
정규시즌은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순위 싸움을 벌이는 팀들에게 남은 한 경기는 4월이나 5월의 한 경기와 무게가 다르다. 1승에 정규시즌 순위가 달라질 수 있고 포스트시즌 출발 지점이 바뀔 수도 있다. 어떤 팀에는 사실상 매 경기가 결승전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시즌 중반과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만 마운드를 운영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도 전제가 있다. 선수가 건강해야 한다. 의학적인 위험 신호가 없어야 하고 선수 본인의 의사도 존중돼야 한다. 시즌 누적 투구량과 최근 등판 강도까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중요한 경기니까 던져라’는 과거식 정신론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보다 정교하게 관리하자는 것이다.
모든 투수에게 똑같은 휴식일을 적용하는 것보다 선수마다 다른 회복 능력을 확인하고, 투구 수뿐 아니라 실제 투구 강도와 몸 상태까지 살펴 필요할 때는 조금 더 과감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보호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보호의 방식이 더욱 세밀해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27일 일본과 금메달을 놓고 마지막 승부를 벌인다. 한국은 대만전에서 6이닝 노히트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압도적인 투구를 했던 곽빈을 내세운다. 공식 대회 일정상 곽빈은 21일 대만전 이후 충분한 간격을 두고 결승 마운드에 오른다. 반면 일본은 92구를 던진 지 이틀 만인 히구치를 다시 선발로 선택했다. 극단적으로 다른 두 투수 운용 방식이 금메달 결정전에서 마주하게 된 셈이다.
히구치가 몇 개의 공을 던질지는 아직 모른다. 하루 휴식이 그의 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일본의 선택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반대로 한국 타선을 다시 막아내는 놀라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한 경기 결과만으로 어느 방식이 옳았다고 결론 내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히구치가 다시 마운드에 오른다는 사실 자체는 한국 야구에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과거 한국 야구에는 분명 혹사가 있었다. 그래서 보호가 필요했다. 그러나 보호가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굳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투수에게 필요한 부담까지 모두 제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가 됐다. 강한 투수는 많이 던진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던져야 할 순간마다 피한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보호와 과잉 보호는 같은 말이 아니다.
92구를 던지고 하루만 쉬어 다시 결승전 선발로 나서는 히구치. 그 선택을 그대로 따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파격적인 선택이 KBO리그를 향해 던진 질문까지 외면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지금 투수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너무 보호하고 있는가.
금메달 결정전 결과와 별개로 한국 야구가 한번쯤 답을 찾아봐야 할 질문이다.
출처: MHN스포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