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절 수술·퍼트 입스 이겨낸 쩡야니…"우승 열정도, 올림픽 꿈도 남았죠"

고관절 수술·퍼트 입스 이겨낸 쩡야니…"우승 열정도, 올림픽 꿈도 남았죠"

[안산=이데일리 스타in 주미희 기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총상금 15억 원) 1라운드 2번홀(파4). 쩡야니(37·대만)가 그린 밖 13.7m 거리에서 웨지로 굴린 공이 그대로 홀 안으로 빨려들어가 버디가 되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경기를 지켜보던 갤러리들도 “역시 쩡야니!”...

[안산=이데일리 스타in 주미희 기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총상금 15억 원) 1라운드 2번홀(파4). 쩡야니(37·대만)가 그린 밖 13.7m 거리에서 웨지로 굴린 공이 그대로 홀 안으로 빨려들어가 버디가 되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경기를 지켜보던 갤러리들도 “역시 쩡야니!”라며 환호를 보냈다.

쩡야니.(사진=이데일리 골프in 조원범 기자)

코스 위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냉철한 승부사였던 쩡야니는 코스 밖에서는 달랐다. 갤러리들의 갑작스런 사인과 사진 촬영 요청에도 미소로 응했고, 질문 하나하나에 환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때로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답을 이어갔다. 두 차례 고관절 수술과 4년의 공백, 수년간 자신을 괴롭힌 퍼트 입스까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도 쩡야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짙었다.

어린 골프 팬들에게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쩡야니는 한 시대를 지배했던 여자골프의 ‘절대 강자’였다. 2004년 US 여자 아마추어 퍼블릭 링크스 챔피언십에서 미셸 위(미국)를 꺾고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고, 200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신인상을 받으며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전성기는 압도적이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메이저 대회에서만 5승을 쓸어 담았고, 2010년과 2011년에는 LPGA 투어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그의 나이 불과 23세였다. 2011년 2월부터 2013년 3월까지는 109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지키며 역대 두 번째로 긴 기록을 세웠다. 당시 쩡야니는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여자골프의 ‘여제’였다.

굴곡진 선수 생활 후배들에 영감 되길

그러나 단단해 보였던 쩡야니에게도 긴 시련이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입스로 자신의 골프를 잃기 시작했다. 특히 짧은 거리에서 뜻대로 스트로크가 나오지 않는 퍼트 입스가 수년간 그를 괴롭혔다. 경기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상황에서 허리 부상과 고관절 문제까지 겹쳤다. 결국 두 차례 고관절 수술을 받았고 약 4년 동안 사실상 투어를 떠나야 했다.

그래도 골프채를 놓지는 않았다. 긴 재활과 시행착오를 겪은 쩡야니는 지난해 10월 레이디스유러피언투어(LET) 위스트론 레이디스 오픈에서 무려 12년, 4306일 만에 공식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진한 감동을 안겼다.

올해 LPGA 투어에서는 10개 대회에 출전해 컷 통과가 단 두 차례에 그쳤다. 예전의 ‘골프 여제’의 위용과 비교하면 만족하기 어려운 성적이다. 하지만 쩡야니에게 지금의 골프는 성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젊은 선수들과 같은 코스에서 경쟁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는 새로운 행복이 됐다.

쩡야니는 17일 경기 안산시의 더헤븐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친 뒤 이데일리와 만나 “고관절 수술을 받고 4년 정도 쉬었지만 아직도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은 열정이 있다”며 “힘든 시기나 경기력이 좋지 않을 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근 몇 년 동안 플레이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코스에 있는 게 더 행복하고 골프도 더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퍼트 입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도 감행했다. 오른손잡이인 쩡야니는 코치의 권유로 아예 반대 방향으로 퍼트하는 왼손 퍼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쩡야니는 “오랫동안 고관절 문제와 싸워왔는데 코치가 한번 변화를 줘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우리 코치가 미쳤나’ 싶었다”며 웃었다. 이어 “처음 석 달 정도는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불안하거나 긴장되지는 않았다. 결국 더 많이 연습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왼쪽으로 서서 퍼트하는 쩡야니.(사진=이데일리 골프in 조원범 기자)

오랜 시련은 쩡야니가 골프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꿔놨다. 과거에는 오로지 핀만 바라보고 거침없이 공격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골프를 더 이해하고 즐길 줄 알게 됐다.

쩡야니는 “어렸을 때처럼 힘이 좋거나 유연하지는 않다. 어렸을 때는 어떻게 보면 아마추어처럼 골프를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는 게 많아진 만큼 생각도 많아져 가끔 너무 많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며 “반대로 지금은 나 자신답게 경기하면서 대회를 더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젊은 선수들과 함께 뛰는 것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쩡야니는 “어린 선수들과 경기하다 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생각난다. 무조건 핀을 보고 강하게 스윙하면서 모든 샷을 공격적으로 쳤다”며 “그 선수들과 함께 경기하면 ‘나도 아직 할 수 있구나. 아직 좋은 샷을 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동기부여가된다”고 웃었다.

긴 선수 생활이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함께 투어를 누볐던 선수들이 하나둘 필드를 떠나면서 외로움을 느낄 때도 많아졌다.

쩡야니는 “가끔 외롭다. 예전에 함께 투어를 뛰었던 (박)인비, (유)소연, (최)나연 등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했고 친구가 없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 힘들다”고 웃어 보이며 “그럴 때는 가족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어린 선수들과 새롭게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10년, 어쩌면 그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선수들도 많아 세대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젊은 선수들과 경쟁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했다. 특히 자신의 굴곡진 선수 생활이 후배들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랐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어요. 그런 경험을 통해 어린 선수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싶습니다. ‘나도 했으니 너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지금은 어린 선수들이 정말 많고 재능도 뛰어납니다. 그런 선수들과 내가 여전히 함께 경기한다는 것에 감사하고, 동시에 그들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왼쪽부터 황유민과 쩡야니.(사진=KLPGA 제공)

“오수민·황유민 재능 뛰어나”

오랜만에 찾은 한국에서도 쩡야니는 젊은 한국 선수들의 기량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지난해 유소연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지만, 대회 출전을 위해 방한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는 “오랜만에 한국에서 대회를 치르게 돼 정말 즐겁다”며 “코스가 정말 길고 어렵다. 그래서 한국 선수들이 그렇게 잘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함께 경기한 아마추어 오수민과 황유민의 장타와 재능에 감탄했다. 쩡야니는 “오늘 함께한 아마추어 선수(오수민)도 공을 정말 멀리 쳤다. 플레이를 지켜보는 게 굉장히 재미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다. 겸손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할 줄 안다”며 “앞으로 LPGA 투어의 새로운 스타가 됐으면 좋겠다. 옆에서 잘 이끌어줄 사람만 있다면 충분히 잘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올 시즌 LPGA 투어에 데뷔한 황유민에 대해서도 “체격은 작지만 공을 굉장히 멀리 보내고 힘도 좋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라며 “이번에 한국에 와서 좋은 선수들을 정말 많이 본 것 같다”고 했다.

오랜 미국 생활을 경험한 쩡야니는 영어가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선수의 적응을 크게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영어를 잘하는 한국 선수가 많지 않았다. 나 역시 LPGA 투어 루키 시절에는 영어를 정말 못했다”고 웃었다.

그는 “영어를 할 수 있으면 미국에서도 훨씬 편안하고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친구도 사귀고 어디를 가든 편안해진다. 자기만의 작은 울타리에서 한발 밖으로 나가기도 쉬워진다. 조금만 할 수 있어도 좋은 시작”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황유민과 오수민 모두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했다.

이제 자신을 ‘올드 레이디’라고 농담할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경쟁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하다. 성적에 대한 부담에서도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그는 “지금 행복하다. 물론 여전히 잘하고 싶다. 오늘은 초반에 조금 긴장해 플레이가 좋지는 않았지만(4오버파 76타 공동 56위) 내일은 더 좋아질 것 같다”며 “무엇보다 여기 와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이따가 아웃렛에 쇼핑하러 갈 계획이다. 한국을 즐기고 있다”며 크게 웃었다.

그 속에서도 승부사의 목표는 분명했다. 다시 한번 우승하는 것, 또 전성기 시절엔 경험하지 못했던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이다.

쩡야니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묻자 주저 없이 “올림픽”이라고 답했다.

“대만을 대표해서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요. 제가 한창 좋은 성적을 낼 때는 올림픽에 골프가 없었거든요.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지금 제 목표입니다. 그리고 대회에서 한 번 더 우승하고 싶어요. 파이팅!”

쩡야니.(사진=이데일리 골프in 조원범 기자)

출처: 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