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나면 타이어 감고 스윙, 심한 화상 입은 손으로 안타왕”…이만수가 기억한 장훈

“피 나면 타이어 감고 스윙, 심한 화상 입은 손으로 안타왕”…이만수가 기억한 장훈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훈. 연합뉴스 자료사진[스포츠경향 김세훈 기자] ‘안타 제조기’ 장훈은 손바닥에서 피가 나도 방망이를 놓지 않았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 피가 흐르는 손에 자전거 타이어를 찢어 감고 다시 스윙했다. 어린 시절 오른손에 심한 화상을 입어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 않...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훈.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소장품 기증식에서 포즈를 취하는 장훈. 연합뉴스 자료사진

[스포츠경향 김세훈 기자] ‘안타 제조기’ 장훈은 손바닥에서 피가 나도 방망이를 놓지 않았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 피가 흐르는 손에 자전거 타이어를 찢어 감고 다시 스윙했다. 어린 시절 오른손에 심한 화상을 입어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 장애까지 있었지만 일본프로야구(NPB) 통산 3085안타를 때려냈다.

‘헐크’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이 최근 별세한 장훈을 떠올리며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을 소개했다.

이 이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추모 글을 올려 고교 시절 장훈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야구용품을 한 아름 선물받은 기억,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일본을 꺾을 때마다 누구보다 기뻐했던 모습 등을 회상했다.

이 이사장이 장훈을 처음 만난 것은 1977년이었다. 고교 3학년이던 그는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돼 일본 가고시마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장훈은 이만수가 중학생 때부터 동경했던 야구 영웅이었다.

특히 장훈의 훈련 이야기는 어린 이만수에게 큰 영향을 줬다. 이 이사장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대학 시절까지 장훈 선배가 쓴 책을 끼고 살았다”고 적었다.

책에는 장훈이 스윙 연습을 너무 많이 해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자 자전거 타이어를 찢어 손에 감고 다시 방망이를 휘둘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이사장은 “나도 장훈 선배처럼 똑같이 연습했다”고 회상했다.

장훈은 어린 후배에게 야구용품도 아낌없이 내줬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당시 장훈은 자신을 숙소 방으로 불러 배트 10자루와 포수 미트 3개, 스파이크와 배팅 장갑 10개를 선물했다.

당시 일본프로야구 선수들이 사용하던 최고급 장비였다. 특히 장훈이 직접 사용하던 나무 배트도 포함돼 있었다. 이 이사장은 존경하던 선수에게 받은 선물에 들떠 숙소로 돌아왔지만 선배들에게 배트와 미트, 스파이크, 장갑을 하나씩 빼앗겼던 일까지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페이스북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페이스북

무엇보다 잊지 못한 것은 장훈의 오른손이었다.

이 이사장은 장훈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만수야, 이런 손으로 내가 여기까지 왔단다”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장훈은 어린 시절 사고로 오른손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손가락 일부가 붙고 굽은 장애가 남았고, 원래 오른손잡이였던 그는 결국 왼손으로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치는 선수가 됐다. 이 이사장은 “한번 만져보라고 해서 장훈 선배의 손을 직접 만졌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며 “어떻게 그런 손으로 일본프로야구를 평정했는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장훈은 장애를 안고도 일본프로야구에서 23시즌을 뛰며 통산 3085안타를 기록했다. NPB에서만 뛴 선수 가운데 유일한 3000안타 타자다. 통산 타율 0.319와 504홈런, 1676타점을 남겼고 타격왕에도 7차례 올랐다. 1990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한국프로야구 출범 이후에도 이어졌다. 장훈은 1982년부터 2005년까지 KBO 총재 특별보좌역을 맡아 한국야구와 꾸준히 인연을 맺었다.

이 이사장이 기억하는 장훈은 일본에서 대기록을 쌓은 스타이면서 동시에 한국야구의 승리를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 선배였다. 그는 “한국프로야구가 세계야구대회에서 일본을 이겼을 때 어느 누구보다 가장 기뻐했던 분이 장훈 선배였다”며 “한국야구가 잘되기를 누구보다 바랐던 분”이라고 적었다.

장훈은 지난 9일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다.

이 이사장은 “어린 시절부터 장훈 선배와의 추억을 남들보다 많이 갖고 있었다”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선배님 편히 쉬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김세훈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스포츠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