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은 위대한 선수다…그런데 계속 주장이어야 할까
지난 6월 24일(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기에서 0 대 1로 패한 뒤 손흥민이 아쉬운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다. photo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손흥민(34·로스앤젤레스 FC)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장수 국가대표팀 주장이다....

손흥민(34·로스앤젤레스 FC)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장수 국가대표팀 주장이다. 손흥민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2018년 9월 7일 코스타리카전부터 본격적으로 주장 완장을 찼다. 어느덧 8년이다. 손흥민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2026 북중미 월드컵에도 주장으로 나섰다. 손흥민은 한국 선수 최초 '2회 연속 월드컵 주장'이다.
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이 결정됐다. 스페인 출신 로베르토 모레노 감독이다. 모레노 감독은 9월부터 11월까지 A매치 6경기를 지휘한다. 모레노 감독의 계약엔 경기력과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받아 2027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막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 동행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도 포함됐다. 한국 축구가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새롭게 출발한다면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문제가 있었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표팀 주장도 예외일 수 없다.
위대한 선수가 위대한 주장?
손흥민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유럽에서 오랫동안 한국 축구의 이름을 알렸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축구를 잘하는 것과 선수단을 하나로 묶어 이끄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위대한 선수라고 해서 위대한 주장인 것은 아니다.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찬 지난 8년 동안 대표팀 내부 문제가 여러 차례 표면으로 드러났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이후 세상에 알려진 이른바 '2701호 사태'가 대표적이다. 대한축구협회(KFA)가 2023년 1월 공개한 입장에 따르면 대표팀 일부 선수는 손흥민의 개인 트레이너였던 안덕수씨가 KFA 의무 스태프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KFA는 안씨가 공개 모집에 지원하지 않았고, 요구하는 자격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KFA는 일부 선수가 안씨를 장비 담당 등 다른 직책으로 등록한 뒤 의무 활동을 하게 하는 방안까지 제안했다고도 설명했다. KFA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KFA의 설명처럼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직책을 조작하면서까지 불법을 묵인하고 조장할 순 없었다. KFA는 동시에 선수들의 요구를 충분히 듣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점 등 자신들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선수들은 의무팀 운영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최상의 몸 상태로 경기에 나서고 싶은 선수들의 마음과 요구 역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요구와 공적인 조직이 지켜야 할 절차는 별개의 문제다. 물론 이 사태를 손흥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순 없다. 공개된 자료만으로 손흥민이 당시 선수들의 요구를 주도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다만 대표팀 주장에게는 선수단을 대표하는 역할이 있다. 선수단과 KFA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주장단이 어떤 역할을 했고,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돌아볼 수 있는 문제다.
2024년 2월 카타르에서 진행된 아시안컵에서도 큰 사건이 발생했다. 요르단과 대회 준결승을 하루 앞두고 손흥민과 이강인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이강인은 이후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다. 손흥민을 직접 찾아가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손흥민 역시 자신의 행동이 모두 옳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손흥민은 당시 "나도 내 행동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강인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이강인에게 잘못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강인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 대표팀 선배와 물리적 충돌까지 벌인 행동은 분명 적절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난의 상당 부분은 이강인에게 집중됐다. 그의 이름 앞에는 '하극상'이라는 단어까지 따라붙었다. 당시 대표팀 몇몇 구성원에게 직접 확인한 바로는 선수단 내부에서도 이 사건을 이강인 개인만의 잘못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이 있었다. 대표팀 내부의 모든 문제를 주장에게 책임 지우는 것도 옳지 않다. 선수단 관리의 최종적인 책임은 감독과 코칭스태프에 있다. 그러나 주장은 선수단의 리더다. 대표팀이 중요한 대회를 치르는 도중 선수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할 정도로 분열됐다면 '주장의 리더십은 제대로 작동했는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돌아볼 만한 일이 있었다. 국내 취재진이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손흥민을 향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은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KFA도 해당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취재진에 유감을 표했다. 덧붙여 선수들에 대한 존중과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수단은 국내 취재진을 상대로 한동안 인터뷰를 거부했다. 손흥민은 동시에 박항서 전 단장을 통해 몇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손흥민은 부적절한 발언의 피해자이자 선수들을 보호해야 하는 주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을 했다.
현실적 판단도 필요한 시점
다만 주장의 역할이 피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해당 사태는 월드컵 기간까지 이어졌다. 인터뷰를 언제 재개할지를 두고선 선수단 내부 의견이 갈렸다는 사실이 국회 청문회를 통해 밝혀졌다. 홍명보 전 감독은 청문회에서 선수단 관리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선수들을 향한 부당함이 있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은 주장의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손흥민은 해야 할 일을 했다. 다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동료들을 설득하고 하나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 역시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선수단 내부에서 대응 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생겼다면 주장이 그 과정을 어떻게 조율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손흥민은 여전히 대표팀에서 활용 가치가 큰 공격수다. 손흥민이 그라운드에서 쌓아온 경험도 쉽게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손흥민은 34세다. 세월의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2030년 월드컵이 열릴 때 손흥민은 38세가 된다. 손흥민이 철저한 몸 관리를 통해 4년 뒤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순 있겠지만 지금처럼 대표팀 핵심일 것이라는 전제 아래 팀을 설계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표팀은 2027년 1월 아시안컵을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2030년 월드컵도 바라봐야 한다. 대표팀은 언젠가 '손흥민 없는 시대'를 맞는다. 그렇다면 대표팀은 그 준비를 언제 시작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손흥민이 가진 경험은 여전히 소중하다. 손흥민은 네 차례 월드컵 포함 A매치 147경기에서 56골을 기록 중이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 역사상 A매치에 가장 많이 출전한 선수다. A매치 득점에선 차범근(58골)에 이어 역대 2위다. 새로운 주장이 등장한다고 해서 손흥민의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손흥민은 2030년 월드컵을 향하는 대표팀에서 중요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주장이 선임된다면 최장수 주장으로서 자신이 쌓은 경험을 전수할 수도 있다.
최종 선택은 모레노 감독의 몫이다. 다만 KFA는 지난 대표팀 운영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고, 선수단 내부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등의 객관적 사실을 새 코칭스태프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 뒤 모레노 감독이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충분히 소통해 판단하면 된다. 손흥민이 국민적 사랑을 받는 위대한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반복된 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않을 시점은 지났다.
출처: 주간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