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화천까지… 축구장 찾아 헤매는 꿈나무들
유소년 축구, 훈련할 곳이 없다이달 초 강원도 양양 종합스포츠타운에서 열린 ‘리틀K리그 양양 슈퍼리그’에 참가한 유소년 축구 클럽 선수들이 공을 다투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 클럽들은 고정 훈련장을 확보하지 못해 경기·강원 지역까지 오가며 축구장을 빌려 훈련하고 있다. /노원 한마음FC “저희는 메뚜기 신세입니다. 매일...
유소년 축구, 훈련할 곳이 없다

“저희는 메뚜기 신세입니다. 매일 이 운동장, 저 운동장으로 옮겨 다니며 훈련해야 하거든요.”
21일 오후 경기도 광주의 한 축구장에서 연습경기를 마친 서울 동대문구 소재 A 초등부 축구클럽 감독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트 선수를 꿈꾸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이 클럽은 현재 경기도 남양주와 구리, 광주에 있는 축구장과 실내 풋살장을 전전하고 있다. 강원도 화천까지 가서 연습 경기를 할 때는 어린 선수들이 버스만 왕복 4시간 이상 타기도 한다. 그는 “제가 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운동할 때 잔디 구장은 없어도 ‘오늘은 어디서 공을 차나’ 같은 고민은 없었다”며 “축구장을 찾아 이곳저곳 떠돌다 보니 예전보다 훈련량이 크게 줄었고, 아이들이 개인 훈련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 개혁을 위해 유소년 육성 시스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선 지도자들은 “어린 선수들이 당장 공을 찰 공간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경우 대한축구협회에 정식 등록된 1종 전문 선수(엘리트 지향 선수)를 육성하는 초등부 클럽 50여 곳이 훈련할 운동장을 못 찾아 ‘유랑 축구단’ 신세가 되곤 한다. K축구 혁신위원회를 이끌었던 박지성 FIFA 분과위원은 “훈련장 확보조차 어렵다는 걸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학교 운동부의 스포츠클럽 전환이 추진되고, 2010년대 후반 학교 밖 클럽을 중심으로 한 선수 육성이 확산하면서 훈련장 부족 현상이 불거졌다. 학교 운동장에서 훈련하던 선수들이 외부 클럽 소속이 되면서 학교 운동장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교들이 “운동장은 비영리 목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는데, 클럽 운영은 영리 활동에 해당한다”며 사용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류성현 서울초등축구지도자협의회 부회장은 “노원구에 초등부 축구 클럽은 5곳인 반면 초등학교는 30여 곳”이라며 “이 중 5곳만 운동장을 개방해도 훈련장 부족 문제를 일단 해결할 수 있는데, 비합리적인 규정에 가로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초등부 클럽들은 공공 생활체육 시설에서 훈련을 진행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서울에 생활체육 축구장 70여 곳이 있지만, 1000여 개에 달하는 조기축구회와 축구 동호회 등과 대관을 놓고 피 말리는 ‘광클(빛의 속도로 클릭) 전쟁’을 벌여야 한다. 서울 강북구 소재 B클럽 감독도 “그나마 가까운 빈 운동장을 찾아 다니느라 세 곳을 오가며 훈련하고 있다”며 “수도권 초등부 축구 클럽은 대부분 비슷한 처지”라고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어린 선수들과 학부모들에게 돌아간다. 아이들은 매일 달라지는 훈련장을 오가느라 체력을 소모하고, 학부모들은 늘어나는 비용에 허리가 휜다. B클럽 감독은 “경기도로 가서 야간 훈련을 할 경우 셔틀버스 임대료, 조명 사용료 등으로 한 번에 수십만 원의 추가 비용이 드는데 고스란히 학부모 몫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고 토로했다. 서울 소재 클럽 감독 C씨는 “일부 학교가 예외적으로 특정 클럽에 운동장을 빌려주면 다른 클럽에서 ‘왜 저 팀만 허용하느냐’고 민원을 넣어 대관이 중단되는 등 클럽끼리 갈등을 빚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했다.
어렵게 훈련장을 확보해도 문제는 남는다. 초등부 축구는 성인 축구(11대11)와 달리 8대8로 진행돼 경기장 규격(68m×52m)과 골대 크기가 다르다. 하지만 지자체 체육 시설에서는 초등부 경기 규격에 맞춰 별도의 선을 긋거나 전용 골대를 설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 초등부 주말 리그는 8대8 경기장 선을 표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구장인 효창운동장에 집중된다. 주말에 모든 경기를 소화하기 어려워 평일에도 리그 경기를 치르는 실정이다.
학생 선수들의 대회 참가를 둘러싼 마찰도 끊이지 않는다. 초등학생 선수의 출석 인정 결석 일수가 연간 20일로 제한되면서 무더운 여름방학과 추운 겨울방학 기간에 대회가 집중적으로 열린다. C 감독은 “학기 중에 열리는 대회에 자녀를 출전시키는 학부모들은 학교에 ‘가족과 현장 체험 학습을 간다’고 허위 신청서를 내는 실정”이라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