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야구장의 마지막 날, 양현종이 떠올린 그날, 김도영은 알지 못하는 그날[스경x현장]

잠실야구장의 마지막 날, 양현종이 떠올린 그날, 김도영은 알지 못하는 그날[스경x현장]

KIA 양현종이 2017년 10월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9회말 세이브, 우승을 확정한 뒤 김기태 당시 KIA 감독과 끌어안고 기뻐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스포츠경향 잠실 | 김은진 기자] KIA가 LG에 압승을 거둬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20일 늦은 밤, KBO가 진행하는 그라운드 행사...

KIA 양현종이 2017년 10월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9회말 세이브, 우승을 확정한 뒤 김기태 당시 KIA 감독과 끌어안고 기뻐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KIA 양현종이 2017년 10월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9회말 세이브, 우승을 확정한 뒤 김기태 당시 KIA 감독과 끌어안고 기뻐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스포츠경향 잠실 | 김은진 기자] KIA가 LG에 압승을 거둬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20일 늦은 밤, KBO가 진행하는 그라운드 행사가 종료되자 양현종(38·KIA)이 다시 더그아웃으로 나왔다. KIA 선수단이 모두 귀가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양현종은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려다 망설이며 “지금 가서 흙 좀 가져와도 되는 거겠죠?”라고 물었다. 빈 생수통을 들고 마운드로 향한 양현종은 마운드의 흙을 한 줌씩 천천히 담았다. 흙이 담긴 통을 소중하게 들고 양현종은 경건하게 마운드를 내려왔다.

2007년 2차 1라운드 1순위로 KIA에 지명된 양현종은 그해 4월7일 LG 상대로 데뷔했다. 잠실구장에서였다. 9-1로 크게 이기고 있던 9회말 등판해 마해영에게 솔로홈런을 맞고 1이닝 1실점 했다. 나중에 대투수가 될 19세 어린 양현종, 지금까지 통산 2781.1이닝을 던진 양현종의 첫 이닝이었다.

20년 동안 양현종은 정규시즌에서 잠실구장 마운드에 63번 올랐다. 광주를 제외하면 투수 양현종이 가장 많이 던진 경기장이 바로 잠실야구장이다. 선발 등판은 52경기였다. 통산 198승 투수인 양현종의 19승이 잠실구장에서 나왔다.

KIA 양현종이 20일 잠실야구장 역사의 최종전이 된 준플레이오프 3차전을 마친 뒤 마운드의 흙을 생수병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
KIA 양현종이 20일 잠실야구장 역사의 최종전이 된 준플레이오프 3차전을 마친 뒤 마운드의 흙을 생수병에 담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까지 양현종 야구인생 유일한 세이브를 거둔 곳도 잠실구장이다. 2017년 두산과 한국시리즈 5차전, 7-6으로 앞선 9회말에 시리즈를 끝내기 위해 6차전 선발 예정이던 양현종이 마무리로 깜짝 등판하는 승부수가 등장했던 곳이다. 볼넷 2개에 내야 실책으로 1사 만루 위기에 몰린 양현종이 두 타자 연속 내야플라이로 잡고 우승을 확정, 두 팔을 들어 포효하고 눈물 글썽이는 김기태 감독을 꼭 끌어안으며 미소지었던, KIA에게도 역사적인 장소다. 2차전 승리 뒤 5차전 우승 확정 세이브로 양현종은 한국시리즈 MVP가 됐고, 그해 사상 최초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MVP를 독식했다.

그 잠실구장이 문을 닫는다. 올시즌을 끝으로 철거되는 잠실구장을 떠나 LG와 두산의 홈그라운드는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으로 임시 이동한다. LG와 2026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난 KIA는 광주에서 1·2차전을 이기고 원정지 잠실로 이동했다. 양현종은 4차전 선발 등판 예정이었지만 3차전까지 KIA가 승리하면서 4차전은 사라졌다. 플레이오프에서 기다리는 삼성은 대구, 한국시리즈에 가 기다리고 있는 KT는 수원이 홈이다. 잠실에서 더이상 가을야구는 없다. 잠실의 프로야구는 이날로 끝이 났다.

KIA 양현종이 20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을 마친 뒤 잠실구장 마운드의 흙을 담아 소중하게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KIA 양현종이 20일 준플레이오프 3차전을 마친 뒤 잠실구장 마운드의 흙을 담아 소중하게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4차전에서 자신이 잠실구장의 마지막 등판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동시에 3차전에서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날 경기 전 운동을 했던 양현종은 “몸을 풀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첫 등판,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첫 세이브가 모두 잠실이다. 20년 전인데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며 추억했다.

양현종은 지금의 KIA 선수들 중 잠실구장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함께 했다. “내가 잠실구장과 가장 오랜 인연을 맺어왔기 때문에 생각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언제나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양현종은 잠실구장과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마운드 흙을 담았다.

그 모습을 2003년생 김도영이 조용히 지켜봤다. “양현종 선배님은 정말 낭만적이시다”라고 했다. 2017년 감격 우승의 추억을 선수로서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김도영에게도 잠실은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내게는 잠실 경기가 아직 (고교 시절) 전국대회 같다”고 잠실을 어려워 했던 김도영은 이번 가을 잠실에서 길이 남을 홈런을 연달아 때렸다.

양현종이 마운드의 흙을 담을 즈음, 양 구단 관계자들 중에서는 그라운드로 나가 중앙을 향해 절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기 장밖에서도 일부 LG 팬이 야구장을 향해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퇴장하기 전 한 번씩 그라운드를 더 응시하다 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야구 팬들에게도 잠실구장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기억이 쌓인 추억의 공간이다. 2026 가을야구가 다음 장으로 넘어간 날, 모두가 잠실구장과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잠실 | 김은진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스포츠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