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쳇바퀴 인생, 나도 좀 쉬자!” 두산 떠나는 김태룡 단장, 잠실구장과 함께 ‘잠시만 안녕’[장강훈의 액션피치]
두산베어스 김태룡 단장이 잠실구장 스탠드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최승섭기자 [email protected][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나도 좀 벗어나보자.”목소리가 밝았다. 이미 준비한 현실이라 홀가분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좀 쉬어야지”라더니 이내 “야구계 근처에서 멀러...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나도 좀 벗어나보자.”
목소리가 밝았다. 이미 준비한 현실이라 홀가분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좀 쉬어야지”라더니 이내 “야구계 근처에서 멀러 못 벗어날거야”란다. 어쩌면 ‘잠실구장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준플레이오프(준PO) 3차전을 하루 앞둔 날, 일찌감치 포스트시즌까지 마친 두산은 KBO리그 역대 최장수 단장과 이별했다.

두산 김태룡 단장이 물러났다. 구단은 19일 “정재훈 운영팀장을 신임 단장으로 임명하고, 김 단장에게 구단 자문역을 맡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말이 자문이지 퇴단이다. 축하(?) 전화를 했다. 20년가량 지켜본, 여러 프런트들의 ‘롤모델’로 불린 단장의 퇴장은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김 전 단장은 “회전문 같은 삶”이라고 말했다.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 승부가 일상인 삶은 생각보다 훨씬 외롭고 긴 싸움이다. 그는 “43년 했으면 오래했다. 나도 좀 쉬자”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신임)정 단장이 잘할 것”이라며 “구단이 공들여 키운 인재니까, 잘 좀 봐달라”고 당부했다. 정 신임단장의 행보도 김 전 단장과 묘하게 닮았다. 우려보단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계에 뛰어든 게 1983년이다. 롯데 강병철 코치의 부름으로 구단 기록원, 훈련보조, 티켓판매 등 허드렛일 하는 계약직으로 시작했다. 1989년 잠깐 원단 무역업을 하는 선배와 일하다 1990년 OB 박용민 사장의 부름으로 다시 야구계로 돌아왔다.
티켓 판매를 시작으로 오랜기간 매니저를 하다 운영, 홍보 등 주요 보직을 맡았다. 2011년 단장에 부임했고, 2016년 전무이사로 승진했다.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평가가 ‘KBO리그의 살아있는 신화’로 바뀐 순간이다.

김 전 단장은 부산고 동아대에서 야구선수로 뛴 야구인이다. 대학 때 어깨를 다쳐 강제은퇴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까지 은퇴시키진 못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르며 최장수 단장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유니폼 입은 현장과 프런트의 소통이 곧 전력’이라고 믿는 뚝심 덕분이었다.
두산그룹이 크게 휘청일 때 애써 키운 선수나 코치들이 팀을 떠났다. ‘왕조’로 불리던 시절이라, 떠나는 이들을 지켜보는 김 단장의 속도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일부 코치는 적은 우승 보너스에 “두산, 진짜 이렇게 야구하면 안된다”라며 대놓고 볼멘소리했다.

주축 전력이 팀을 떠나면, 팬 성화가 빗발친다. 야구인 후배들의 성토와 팬 비난은 단장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이때도 김 단장은 단 한 번도 모기업을 비난하거나 야구인 후배들에게 섭섭함을 표하지 않았다. 늘 같은 표정, 같은 몸짓으로 이들을 대하면서도 이른바 ‘화수분’으로 불리는 육성 체계를 공고히하는 데 온힘을 쏟았다.
수시로 일본을 오가며 트레이닝과 육성, 선수 구성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유창한 일본어로 ‘유학파’로 오해받곤 하지만, 구단 매니저시절 재일교포 선수들을 돌보며 어깨너머로 배운 ‘생존형 독학’이다. “야구판에 있으려면 일본어는 필수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결실을 볼 때까지 노력하는 게 김 전 단장의 취미이자 특기다. 없는 살림에도 ‘왕조’를 유지한 것도, 이후 짧은 쇄신을 거쳐 그래도 4등 5등은 하는 팀으로 버티는 것도 김 전 단장이 취미와 특기를 자신이 아닌 팀을 위해 발휘한 덕분이다.
김 전 단장은 “구단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몇 년 됐다. 두 번째 인생에 관한 준비도 나름대로 해놨다”며 허허 웃었다. 구단을 떠나지만 ‘은퇴’는 아니라는 얘기다.
천생 ‘야구인’인 김 전 단장의 두 번째 인생에 응원을 보낸다. [email protected]

출처: 스포츠서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