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PO2]'소녀상' 김도영 '빙모상' 임찬규...절실함에도 승패가 있다면 무승부, 남은 건 실력으로 이기는 것 뿐
출처:KIA/LG / 타격 준비를 하는 김도영(왼쪽)과 실점을 아쉬워 하고 있는 임찬규(MHN 정철우 기자) 간절함에도 무게가 있을까. 누군가는 잠 못 이루는 밤 소녀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로 떠나보낸 슬픔을 안고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시작된 기...

(MHN 정철우 기자) 간절함에도 무게가 있을까. 누군가는 잠 못 이루는 밤 소녀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로 떠나보낸 슬픔을 안고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시작된 기도지만 바라는 결과는 하나다. 승리다. KIA 타이거즈 김도영과 LG 트윈스 임찬규가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각자의 간절함을 가슴에 품고 맞선다. 누구의 절실함이 더 큰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승부다.
김도영에게 이번 가을은 특별하다. 정규시즌 마지막까지 치열한 순위 경쟁을 펼쳐야 했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김도영이 있었다. LG와 시즌 최종전을 앞둔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준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이 걸린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숙소 밖으로 나와 산책하던 김도영은 우연히 소녀상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간절하게 기도했다. 자신의 방망이가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소녀상과 광주는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슬픔과 극복의 역사다. 잊어서도 안되고 잊을수도 없는 슬픔이 담겨 있다. 하지만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해온 대한민국의 힘이 담겨져 있다.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김도영은 LG와 최종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투런 홈런을 터뜨렸고, KIA는 4-2로 승리하며 준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한 방을 때려낸 것이다. 단순한 홈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팀의 운명을 자신의 방망이로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김도영에게도 쉽게 잊히지 않을 장면이 됐다.
김도영은 LG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다시 소녀상을 찾았다. 이번에는 승리를 바라는 기도에 감사의 마음까지 담았다고 한다. 우연히 마주쳤던 소녀상이 이제는 마음을 다잡는 특별한 장소가 된 셈이다. 김도영에게 소녀상은 더 이상 지나가는 길에 만난 조형물만은 아니다. 가장 절박했던 순간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자 새로운 승부를 앞두고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소가 됐다.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아픔을 안고 승부를 준비하는 투수가 있다. LG의 다승왕 임찬규다.
임찬규는 17일 빙모상을 당했다. 아내인 프로골퍼 손새은과 친구처럼 가까웠던 장모님을 떠나보내야 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추스를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준플레이오프 2차전 선발 등판이라는 무거운 책임까지 짊어지게 됐다. 야구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가족과의 이별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임찬규가 감당해야 할 마음의 무게는 쉽게 헤아리기 어렵다.
등판을 미루는 선택도 가능했다. 누구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사정이다. 하지만 임찬규는 예정대로 마운드에 서기로 했다. 개인적인 슬픔을 앞세우기보다 팀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선택이었다.

LG의 선발 사정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지 않은 결정이다. 포스트시즌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갑작스럽게 바꾸는 것은 단순히 투수 한 명의 등판 날짜를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뒤이어 나설 투수들의 휴식 일정부터 불펜 운영까지 모든 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 가뜩이나 선발 자원이 넉넉하지 않은 LG로서는 임찬규의 이탈이 시리즈 전체를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었다. 임찬규는 그 부담을 팀에 넘기지 않기로 했다.
흥미로운 것은 기록만 놓고 보면 임찬규에게 이번 결정이 반드시 유리한 선택은 아니라는 점이다.
임찬규는 올 시즌 잠실에서 10승2패, 평균자책점 3.44를 기록했다. 힘으로 타자를 압도하는 유형이 아닌 만큼 넓은 잠실구장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광주에서는 2경기에 등판해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6.23에 그쳤다. 구장별 성적만 비교한다면 광주에서 열리는 2차전보다 잠실에서 펼쳐지는 3차전에 나서는 편이 임찬규에게는 더 나은 조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임찬규는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선택하는 대신 팀이 정해놓은 길을 그대로 걷기로 했다. 슬픔을 안고도 마운드에 오르겠다는 결심에는 동료들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책임감이 담겨 있다. 다승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성적을 거둔 투수가 이제는 기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무게를 감당하려 하고 있다.
하늘로 떠난 장모님을 향해 어떤 말을 건넸을지는 임찬규만이 알 수 있다. 다만 가장 가까운 가족을 잃은 직후에도 마운드에 서기로 한 그에게 이번 등판이 평소와 같은 경기일 수는 없다. 장모님과의 추억, 남겨진 가족을 향한 마음, 그리고 팀을 위해 반드시 제 몫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함께할 수밖에 없는 승부다.

김도영은 소녀상 앞에서 간절함을 다잡았고, 임찬규는 가족과의 이별이라는 아픔 속에서 마운드에 오를 결심을 했다. 두 사람의 사연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김도영의 기도가 승리를 향한 절박함에서 시작됐다면 임찬규의 등판에는 개인적인 슬픔을 넘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까지 더해져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의 간절함이 더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절실함은 숫자로 계산할 수도,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할 수도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2차전은 단순한 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KIA가 승리하면 2승을 먼저 확보하며 시리즈를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끌고 갈 수 있다. 반대로 LG가 반격에 성공하면 1승1패로 균형을 맞춘 채 익숙한 잠실로 돌아갈 수 있다. 같은 1승이지만 그 결과가 만들어낼 시리즈의 흐름은 완전히 달라진다.

물론 기도가 홈런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슬픔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만으로 타자를 잡아낼 수도 없다. 결국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김도영의 방망이와 임찬규의 공이다. 상대 투수의 실투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제구력,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기량을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맞대결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야구라는 승부 뒤에 숨겨진 두 선수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김도영은 다시 한번 팀을 구하는 영웅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고, 임찬규는 슬픔을 딛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선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간절함의 크기만 놓고 보면 승부는 무승부다. 하지만 야구는 무승부로 끝낼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소녀상 앞에서 두 손을 모았던 김도영과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아픔을 안고 마운드에 서는 임찬규. 두 사람 모두 웃을 자격은 충분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한쪽에만 허락된다.
기도는 각자의 몫이다. 응답은 결국 그라운드에서 받아내야 한다.
출처: MHN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