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셜]'항명 파동'에 무너진 OB를 우승팀으로…'국민 덕장' 김인식 탄생시킨 잠실, 마지막 작별 인사
출처:두산 베어스(MHN 정철우 기자) 잠실야구장은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이곳에서 성장했고, 수많은 명승부가 펼쳐졌다. 하지만 잠실이 만들어 낸 것은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한국 야구 지도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명장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국민감독' 김인식 전 감독이다. 강압적인 통...

(MHN 정철우 기자) 잠실야구장은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이곳에서 성장했고, 수많은 명승부가 펼쳐졌다. 하지만 잠실이 만들어 낸 것은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한국 야구 지도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명장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국민감독' 김인식 전 감독이다. 강압적인 통솔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십으로 무너진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에게 잠실은 단순한 홈구장이 아니었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덕장'이라는 이름을 얻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김인식 전 감독이 잠실야구장의 마지막 정규시즌 경기에 시구자로 나선다. 두산 베어스는 12일 잠실에서 열리는 롯데 자이언츠와 시즌 최종전 시구를 김 전 감독에게 맡겼다고 발표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9년 동안 베어스를 이끌며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낸 명장이다. 잠실의 마지막 정규시즌을 장식할 인물로 이보다 더 상징적인 선택을 찾기도 쉽지 않다.
김 감독이 잠실에서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단순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는 사실이 아니다. 1995년 우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당시 OB 베어스는 우승을 꿈꾸기 어려울 정도로 팀 내부가 무너져 있었다. 선수단의 질서는 흔들렸고,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팀을 불과 1년 만에 정상으로 이끌었다. 김인식이라는 지도자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사건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OB는 윤동균 감독과 주축 선수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결국 선수단의 집단행동으로까지 번졌다. 윤 감독이 선수들에게 "말을 듣지 않을 거면 서울로 올라가라"는 취지로 질책하자 일부 선수들이 실제로 팀을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항명 파동이었다.
당시 스포츠계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충격은 더욱 컸다. 감독의 권위는 절대적이었고, 선후배 사이의 위계질서 역시 엄격했다. 선수들이 감독의 지시에 집단으로 반발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윤동균 감독은 OB를 대표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었다.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지도자와 주축 선수들이 정면으로 충돌했으니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단순히 감독과 몇몇 선수들의 갈등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팀 전체가 흔들렸다. 선수들 사이에도 균열이 생겼고, 구단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차가워졌다. 당시 OB는 전력 자체도 압도적인 팀이 아니었다. 내부 갈등까지 겹치면서 당분간 하위권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마디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런 팀을 넘겨받은 인물이 김인식 감독이었다.
김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강한 통제가 아니었다. 이미 선수단의 마음이 갈라질 대로 갈라진 상황에서 또다시 권위를 앞세워 선수들을 억누르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선수들을 몰아세우기보다 먼저 마음을 열도록 만들었다.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선수들에게도 과거의 잘못만을 들이대지 않았다. 다시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힘을 쏟았다.
물론 선수단의 기강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원칙은 지키되 선수들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다. 일방적인 지시보다 신뢰를 앞세웠고, 잘못을 질책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지도자의 권위가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신뢰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것이 훗날 김인식 감독을 상징하는 '믿음의 야구'이자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출발점이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항명 파동에 연루됐던 선수들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당시 분위기라면 문제를 일으킨 선수들을 배제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선수들을 과거의 행동만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팀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선수라면 다시 기회를 주고, 그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집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1994년 항명 파동으로 사분오열됐던 OB는 1995년 정규시즌 1위에 오른 데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암흑기를 걱정해야 했던 팀이 통합 우승이라는 가장 값진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승 자체도 대단했지만 그 과정은 더욱 특별했다. 단기간에 선수 구성을 완전히 바꿔 만든 성과가 아니었다. 갈등과 불신 속에서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다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면서 만들어 낸 결과였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술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무너졌던 팀의 신뢰를 복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1995년 OB의 우승은 한국 프로야구 지도자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강한 팀을 만드는 방법이 반드시 강압적인 통제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선수들의 자존심을 존중하면서도 팀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고, 엄격한 위계질서 대신 신뢰를 바탕으로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잠실야구장은 그 역사적인 변화의 현장이었다.
1995년 OB는 잠실 연고 구단으로는 처음으로 잠실야구장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했다. 홈팬들 앞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순간이었다. 지도자로서 자신의 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결과로 입증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김 감독의 리더십은 이후에도 OB와 두산의 중요한 자산이 됐다. 1990년대 후반을 거쳐 팀이 꾸준히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고, 2001년에는 다시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1995년 우승이 무너진 팀을 다시 세운 결과였다면 2001년 우승은 그가 만들어 놓은 팀 운영 방식이 일시적인 성공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준 성과였다.
김 감독은 이후에도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활동했다.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국민감독'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하지만 그 명성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1995년 잠실에 도달하게 된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팀을 맡아 선수들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묶었고,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우승을 만들어 냈던 경험이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굳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 감독은 이번 시구를 앞두고 "선수들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눴던 잠실야구장의 마지막 정규시즌 경기에서 시구를 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 오랜 시간 잠실을 지켜준 팬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베어스 후배들이 마지막까지 좋은 경기로 팬들에게 보답하길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짧은 소감이지만 그 안에는 잠실에서 보낸 긴 시간이 담겨 있다. 1994년의 상처를 안고 출발했던 팀, 1995년 정상에 오르며 흘렸던 기쁨의 눈물, 2001년 다시 한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순간까지 모두 잠실과 함께한 기억이다.
두산은 이날 경기 종료 후 '잠실야구장의 은퇴식'도 진행한다. 구단의 각 시대를 대표하는 레전드들이 팬들과 함께 잠실에 마지막 인사를 전할 예정이다. 수많은 선수와 지도자가 이곳을 거쳐 갔지만 김 감독이 남긴 발자취는 유독 특별하다. 그는 잠실에서 우승만 한 것이 아니라 한국 야구에 새로운 지도자상을 제시했다.
1994년 OB의 항명 파동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있었기에 이듬해 김인식 감독이 만들어 낸 변화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무너진 조직을 다시 일으키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 지도자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31년이 흘렀다. 당시 선수들을 다독이며 그라운드를 지휘했던 김 감독은 이제 마운드에 올라 공 한 개를 던진다. 그가 잠실에서 마지막으로 던지는 공에는 단순한 시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잠실은 김인식 감독에게 두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겨준 구장이었다. 동시에 그를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덕장으로 만들어 준 무대이기도 했다.
선수들의 항명으로 무너졌던 팀을 믿음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 지도자. 그 지도자를 '국민감독'으로 성장시킨 야구장.
이제 김인식 감독과 잠실야구장이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1995년의 기적을 함께 만들었던 두 주인공이 31년 만에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다.
출처: MHN스포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