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곰탕면 먹던 고시생→부천FC 메인스폰서가 된 부천 서포터…바스템 김세영 대표의 24년

사리곰탕면 먹던 고시생→부천FC 메인스폰서가 된 부천 서포터…바스템 김세영 대표의 24년

"매출이 줄었는데도 끊지 못했어요. 이제는 직원 월급 주는 것처럼, 숙명이 됐습니다."부천FC1995의 메인스폰서 김세영 바스템 대표는 지난 19일 부천종합운동장 앞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회사 사정이 넉넉해서 하는 후원이 아니다. 그는 "회사 잉여자금으로 후원비를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출을 받아서라도 후원하고 있다...

"매출이 줄었는데도 끊지 못했어요. 이제는 직원 월급 주는 것처럼, 숙명이 됐습니다."

부천FC1995의 메인스폰서 김세영 바스템 대표는 지난 19일 부천종합운동장 앞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회사 사정이 넉넉해서 하는 후원이 아니다. 그는 "회사 잉여자금으로 후원비를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출을 받아서라도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남들에게 조명받거나 잘난 체하고 싶어서도 아니라고 했다. 부천과의 후원 인연은 올해로 10년째. 후원 규모는 처음보다 100배 가까이 커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부천에 빠진 한 축구팬이 자신이 만든 회사의 로고를 유니폼 가슴에 새기는 메인스폰서가 되기까지. 김 대표의 지난 24년은 말 그대로 '성공한 덕후'의 역사다.

사리곰탕면 끓여 먹던 고시생, 이을용의 큰절에 빠지다

김 대표의 '부천 사랑'은 2002년 시작됐다. 군산 출신으로 전주에서 대학을 나온 그는 경찰 간부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오류동 고시원의 한 달 20만원짜리 방이 그의 보금자리였다.

"라면을 끓여 먹고, 몸이 안 좋으면 사리곰탕면을 먹을 정도였어요."

취업 면접을 볼 때마다 고배를 마시던 시절, 한일 월드컵이 열렸다.

"전 국민이 들썩이는 걸 보면서 '축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스포츠였구나' 싶었어요. 부천이라는 도시는 28년 동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오류동에서 가까웠고, 검색해 보니 부천SK에 이을용 선수가 있더라고요."

없는 살림에도 어머니를 졸라 월드컵 두 경기를 직접 봤다. 프랑스의 탈락이 확정된 인천 문학경기장 경기와 대구에서 열린 3·4위전이었다.

월드컵 직관의 열기는 프로축구로 이어졌다. 부천SK 경기를 처음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이을용이 튀르키예 트라브존스포르로 떠나기 전 마지막 경기였다.

"경기도 이겼고, 이을용 선수가 서포터즈 앞에서 큰절하는 걸 처음 봤어요. 붉은악마가 전 국민이던 시절에도 프로축구장에서 한 선수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고 급격히 빠졌죠."

'집에서 가깝다'는 단순한 이유로 찾은 부천은 불과 3~4경기 만에 '내 팀'이 됐다. 당시 여자친구와도 축구 때문에 헤어졌다. "그럴 거면 축구랑 결혼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일요일 오후 7시 야간경기가 열리면 양복을 싸 들고 경기장에 갔다가 곧바로 출근하기도 했다.

그러던 2006년, 부천SK가 제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그의 일상도 무너졌다. 외근 중 지하철역에서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팀이 없어졌대."

"처음에는 '말이 안 된다'였어요. 그다음에는 '앞으로 나 뭐하지?'였고요. 축구가 이미 일상의 한 부분이었으니까요. 우리는 대중적인 축구를 좋아한 게 아니라 '부천'을 사랑했던 거예요. 그게 심해지면 국가대표 경기도 안 보게 돼요. 우리 선수가 없으면요."

그는 이후 1년 넘게 축구를 끊었다. 2007년 12월 시민구단 부천FC1995가 창단하면서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2014년에는 욕실용품 기업 바스템을 창업했다. 샤워필터를 주력으로 항균 필터를 국내에서 처음 개발해 대림바스에 납품했다. 관련 매출이 전체의 30%가량을 차지하는 강소기업으로 키웠다.

그리고 2017년, 회사가 당장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어려웠던 시기에 부천과 '후원 가맹점'으로 다시 인연을 맺었다.

"금액이 정말 작았어요. 개인도 할 수 있는 정도였죠.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2년은 작은 규모로 후원했다. 3년째부터 판이 달라졌다. 구단에서 "유니폼에 회사 로고를 넣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했다. 그 한마디가 그의 '후원 인생'을 바꿨다.

조용익 부천시장(왼쪽), 김세영 대표(가운데) 정해춘 부천FC 대표이사(오른쪽). 사진제공=부천FC
조용익 부천시장(왼쪽), 김세영 대표(가운데) 정해춘 부천FC 대표이사(오른쪽). 사진제공=부천FC

"출장 대신 핸들 돌렸다"…승격 그날, 모두 울었다

부천 팬들이 "환갑 즈음에는 볼 수 있을까"라고 말하던 꿈은 2025년 12월 현실이 됐다.

시민구단 특유의 빠듯한 살림, K리그2에서 보낸 긴 시간, 플레이오프에서 반복된 좌절을 딛고 부천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수원FC를 꺾어 창단 처음으로 K리그1 승격을 확정했다.

김 대표에게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루다.

2차전 다음 날 새벽 중국 출장이 예정돼 있었다. 오전 6시까지 인천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그런데 정작 경기가 다가오자 겁이 났다.

"1차전은 그 험한 경기를 다 봤는데 2차전은 못 보겠는 거예요. 너무 떨리고, 혹시라도 또 좌절할까 봐요. 구단에 전화해서 '나 오늘 수원 안 갈래. 차라리 여기서 심장 떨려도 여기서 죽을래. 운동장은 못 가겠다'고 했죠."

그의 마음을 돌린 건 26년 지기 친구의 전화 한 통이었다.

"야, 너 이 순간을 보려고 지금까지 수고한 거 아니냐."

그 말이 귀에 꽂혔다. 김 대표는 경기장 바로 앞에서 차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이 20년 넘게 기다린 순간을 직접 지켜봤다.

"그날은 다 울었어요. 친구들도 전부 서포터즈인데 다 울었죠. 승격 골이 들어갔을 때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꿈이 이루어질 시간이 이제 40분 남았다'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마음껏 세리머니를 즐길 틈도 없었다. 다음 날 출장을 위해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목소리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여섯 명이 같이 중국에 갔는데 대화를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승격 소식을 들은 중국 거래처 공장 사장들은 그에게 술을 사라고 했다.

"대출받아서 후원하는 사람이 술까지 샀죠. 술값만 한 200만원 나왔나?"

그날의 감동은 김 대표에게 '꿈'의 의미마저 바꿔놨다. 언젠가 한 직원이 "평생 소원이 내 집을 갖는 것이었는데 막상 집을 사고 나니 꿈이 없어졌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도 이제 꿈이 없어요. 꿈을 이뤘으니까."

대출받아서라도 지키는 메인스폰서…"부천은 가족이니까"

정작 회사 사정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부터 매출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도 부천의 메인스폰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폰서십 계약은 1년 단위지만 지난해에는 아예 2년 계약을 맺었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매출이 떨어지는데도 내년까지 하고 싶어서 '숙명'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 승격을 해버렸죠. 사실 승격하면 광고비도 더 올라가야 하는데 동일한 금액으로 더 큰 홍보 효과를 얻고 있는 셈이죠."

부천에서 시작한 바스템의 스포츠 후원은 이제 지평을 넓히고 있다. 수원 삼성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후원을 특별한 일로 포장하는 것도 경계했다.

"저 말고도 훌륭한 분들이 정말 많아요. 재능기부를 하거나, 정기적으로 후원해서 선수들에게 간식을 주는 분들도 있고요. 저는 시간을 내서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뒤에서라도 도움이 됐으면 했어요. 이제는 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죠. 남들에게 조명받고 싶거나 잘난 체하고 싶은 게 절대 아니에요."

4년 전부터는 부천FC 사회적협동조합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구단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리가 아니라 봉사 성격이 강한 조직이다. 오히려 그 자리를 자신이 먼저 "시켜달라"고 했다.

"스스로에게 굴레를 씌운 셈이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10년 넘게 함께한 구단 직원들과의 인연도 후원을 쉽게 놓지 못하는 이유다.

"진짜 동생들 같아요. 본심을 다해주니까요. 한순간에 등을 돌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규모를 줄일 수는 있겠죠. 선수들에 대한 애정도 있지만 결국 가장 큰 건 부천에 대한 애정이에요. 선수들은 왕래가 심하잖아요."

올해는 후원을 시작한 이후 그가 가장 자주 경기장을 찾는 시즌이다. 해외 출장 일정까지 조정한다. 어렵게 맞은 K리그1 첫 시즌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서다.

꿈을 이뤘다고 했지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다음 꿈도 있었다.

"부천과 함께 더 큰 무대에 서는 거죠. 다들 그런 바람을 갖고 있어요. 여기서 조금만 더 욕심을 내면 인천이나 광주처럼 아시아 무대에 나가는 거예요. 부천 유니폼을 입고 나고야든 도쿄든 상하이든 가보고 싶어요. 언젠가 다시 강등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지금은 그냥 즐기자는 생각이에요."

부천=이건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일간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