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의 감성, 골프美학] 가을 골프장으로 가는 길, 카르페디엠
골퍼에게 묻는다. 왜 가을만 되면 부산스럽게 골프장으로 가려 하는지 말이다. 봄에도, 여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이리 재촉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을만 되면 참 많은 골퍼 지인들이 골프장 가자고 난리다. 그 해답을 ‘사람, 그리움 그 사이로’의 필자의 시집에서 답을 구했다.시 제목 중에 ‘짧아서 가을이다’는 시가 있다. 벼...

골퍼에게 묻는다. 왜 가을만 되면 부산스럽게 골프장으로 가려 하는지 말이다. 봄에도, 여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이리 재촉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을만 되면 참 많은 골퍼 지인들이 골프장 가자고 난리다. 그 해답을 ‘사람, 그리움 그 사이로’의 필자의 시집에서 답을 구했다.
시 제목 중에 ‘짧아서 가을이다’는 시가 있다. 벼 밑동만 남은 가을 벌판, 핏기 없이 겨우 매달려 있는 미류나뭇잎, 예고 없이 몰아치는 가을과 겨울 사이의 바람, 그리고 매일 짧아지는 햇살이 골퍼를 골프장으로 부른다. 그래서 가을 골프는 더 급해지고 더 아련하다.
필자에겐 가을 골프장으로 가는 길의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골프장 가는 길은 단순히 운동만을 위함이 아니다. 지치고 고단했던 일상에서의 허전과 위로를 스치며 지나가는 가을 풍경들이 반쯤 열어 놓은 차창 안으로 들어와 따뜻하게 쓰다듬어 준다. 그래서 골프장 가는 길은 GPS를 따라서 기계적으로 가는 것이 아닌,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여행의 시작인 것이다.
골프를 좋아하는 지인 A는 얼마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 심한 우울증이 왔다. 하염없이 몰려드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햇살이 창문 틈으로 환하게 비추었고, 까치가 요란스럽게 울었다고 한다. 순간 어릴 적 엄마가 깨워주던 나지막한 음성과 햇살, 까치 소리가 오버랩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주 가던 골프장을 예약도 없이 운전하면서 아주 천천히 갔다. 그동안 왜 그리 골프장 가는 길을 바쁘게, 급하게 갔을까 싶을 정도로 평온했다고 한다. 자연이 주는 완벽한 해방감이 비로소 머리와 눈에 들어왔고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그리고는 그는 필자에게 “골프가 좋았던 이유가 골프 플레이가 아니라 골프장 가는 길이 더 좋았던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그곳에 가니까 돌아가신 엄마의 숨결까지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필자 역시 골프장을 갈 때와 올 때는 참 천천히 풍경을 담으면서 오고 간다. 특히 가을 골프장 갈 때는 황금 들녘 끝에 걸린 노을과 개 짖는 소리, 무언가를 태우는 풍경이 들어오면 차를 세우고 한참을 멍 때리다가 온다.
그중에 가장 좋아하는 골프장 가는 길은 ‘강촌 엘리시안’이다. 뒤척이는 강과 갈대 그리고 음악에 적당한 안개까지 내린 이곳 골프장을 갈 때는 마음이 그렇게 유연해진다. 마치 바닷가의 깨진 사금파리 한 조각이 오랜 시간 동안 파도에 마모되어 둥글둥글한 몽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좋아했다는 격언이 있다. 카르페디엠(Carpe Diem),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이다. 철학과 교수인 조카는 이렇게 번역해 준다. 카르페디엠은 “오늘을 즐겨라”이고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죽음이 있기에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기에 죽음이 있음을 확인시킨다. 살아 있음에 그 삶을 충실하게 즐기라는 뜻일 것이다.
가을 골프장으로 가는 것은 카르페디엠이고, 곧 메멘토 모리가 오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렇다고 해서 슬퍼할 이유도, 절망할 이유도 없는 것이 가을은 겨울에게 그리고 겨울은 다시 봄에게로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참 아둔해서 늘 100km 이상으로 달리려 한다. 사람에게도 연비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다. 결국 과속하면 차도 사람도 정지할 것이다. 그러니 가을 골프장 갈 때는 조급해하지 말고, 다운시프트(downshift)하고 카르페디엠, 오늘을 즐겼으면 한다.
톨스토이는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죽음이 있어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또 죽음을 준비해 보자.
그리고 가을이 있음에 골프가 더 소중한 것을 성찰하고 골프장으로 가보자. 바깥 풍경도 찬찬히 담아가면서.
글, 이종현 시인.

출처: MHN스포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