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의 천재'가 오른발을 얻을 때...이강인을 깨운 시메오네 [박순규의 창]
오사수나전 첫 풀타임·리그 2호골·MVP, 오른발로 완성한 ‘진화의 증거’엔리케의 멀티 조커에서 시메오네의 핵심 공격수로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새로운 7번 이강인은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을 만나 축구 재능을 활짝 꽃피우며 알레띠의 심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은 2026 쿠팡플레이 시리즈에서 시메오네 감독의 지시를 듣는 이강...
오사수나전 첫 풀타임·리그 2호골·MVP, 오른발로 완성한 ‘진화의 증거’ 엔리케의 멀티 조커에서 시메오네의 핵심 공격수로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인간의 성장은 잘하는 것을 반복하는 데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불편한 영역으로 한 걸음 내디딜 때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왼발의 천재로 불리던 이강인(25·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 오른발로 골망을 가른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한 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강인은 17일 오전(한국시간) 마드리드의 리야드 에어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오사수나와 2026~2027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6라운드 홈경기에서 아틀레티코 이적 후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하며 리그 2호골을 터뜨렸다. 아틀레티코는 4-0으로 대승했고, 이강인은 공식 경기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후반 9분 나온 골은 이강인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너선 데이비드의 패스를 받은 이강인은 페널티지역 오른쪽으로 파고든 뒤 주발인 왼발로 공을 정리했다. 수비수는 자연스럽게 왼발 슈팅과 안쪽 돌파를 경계했다. 그러나 이강인은 지체하지 않고 오른발로 반대편 골문을 갈랐다. 상대가 알고도 막기 어려웠던 왼발에, 예측하기 힘든 오른발까지 더해진 순간이었다.

오른발 슈팅은 우연히 나온 임기응변이 아니다. 이강인은 아틀레티코 합류 이후 의식적으로 오른발 사용 빈도를 높이고 있다. 비야레알과의 2라운드에서는 개인 한 경기 최다인 슈팅 6개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3개가 오른발이었다. 오사수나전에서도 슈팅 6개 가운데 전반 35분 시도와 후반 득점을 오른발로 처리했다. 이번 시즌 확인되는 18차례 슈팅 중 5개가 오른발이었다. 약 28%다. 오사수나전 오른발 득점은 라리가 무대에서 1285일 만에 기록한 오른발 골이기도 했다.
한쪽 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 것은 기술 하나를 추가한 것 이상의 변화다. 축구에서 약한 발은 선수의 한계인 동시에 상대 수비가 의지하는 예측의 근거다. 왼발만 막으면 된다는 계산이 무너지는 순간 수비수의 판단은 늦어지고, 공격수의 공간은 넓어진다. 왼발의 정교함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른발을 더해 왼발의 위력까지 키운 셈이다. 장기 하나를 더했지만 상대에게는 선택지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인간을 ‘극복되어야 할 존재’로 바라봤다. 여기서 극복의 대상은 타인만이 아니다. 어제까지의 자신, 익숙함에 기대려는 자신이다. 이강인의 오른발은 천부적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넓혀가는 ‘자기 극복’의 증거다.
그 변화의 배경에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있다. 같은 재능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파리 생제르맹(PSG)의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이강인을 측면 공격수와 중앙 미드필더, ‘가짜 9번’을 오가는 멀티 자원으로 활용했다면 시메오네는 그 다재다능함을 공격의 중심으로 모으고 있다.

엔리케가 이강인을 외면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PSG에서 다양한 역할과 우승 경험을 얻었고 전술적 이해도도 높였다. 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선발보다 교체 카드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포지션을 메웠지만 정작 ‘이강인의 자리’는 선명하지 않았다. 재능은 인정받았으나 팀의 승부를 책임질 권한까지 충분히 부여받지는 못했다.
시메오네의 접근은 다르다. 그는 이강인에게 압박과 수비 가담을 요구하는 동시에, 공을 잡으면 중앙과 측면을 자유롭게 오가며 슈팅까지 마무리하도록 권한을 줬다. 이강인의 장점을 보존하면서 약점으로 꼽히던 오른발과 수비력을 실전 속에서 확장하고 있다. 보호해야 할 ‘왼발 테크니션’이 아니라 팀의 공수를 책임지는 완성형 공격수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숫자로 나타난다. 이강인은 올 시즌 아틀레티코가 치른 공식전 7경기에 모두 출전해 439분 동안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개막전 말라가전에서는 교체 투입돼 왼발로 결승골을 넣었고, 오사수나전에서는 오른발로 리그 2호골을 완성했다. 첫 골이 기존 재능의 확인이었다면 두 번째 골은 진화의 선언이었다. 왼발과 오른발, 선발과 조커, 창조와 압박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영역을 넓혔다.
시메오네는 선수의 재능에 팀의 정신을 입혀 세계적 스타로 성장시킨 전례가 많다.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주로 측면을 누비던 앙투안 그리즈만은 2014년 아틀레티코에 합류한 뒤 득점과 연계, 수비를 모두 책임지는 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했다. 아틀레티코에서 200골 이상을 기록하며 루이스 아라고네스를 넘어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됐다.

첼시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디에고 코스타는 시메오네 체제에서 파괴적인 스트라이커로 거듭났고, 디에고 고딘은 정상급 수비수이자 팀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코케와 사울 니게스, 앙헬 코레아도 개인의 재능을 ‘아틀레티코의 축구’와 결합하면서 한 단계 높은 선수로 성장했다. 시메오네가 "감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열정은 선수를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말한 이유다.
명장은 선수에게 없는 능력을 마술처럼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선수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경기장에서 반복할 기회를 주는 사람이다. 조각가가 돌 속에 숨어 있는 형상을 찾아내듯 시메오네는 이강인의 왼발만 보지 않았다. 오른발과 활동량, 압박 능력, 득점 본능까지 끌어내며 더 큰 선수의 형상을 만들고 있다.
물론 7경기만으로 그리즈만의 후계자를 선언하기는 이르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강호를 상대로도 영향력을 이어가야 한다. 시메오네 축구가 요구하는 강도 높은 압박과 수비 가담을 긴 시즌 동안 견뎌내는 체력도 증명해야 한다. 오른발 슈팅 역시 일회성 선택을 넘어 반복 가능한 무기로 정착해야 한다.
그러나 출발만큼은 기대 이상이다. 아틀레티코는 이강인에게 그리즈만이 남긴 등번호 7번만 준 것이 아니다. 책임과 신뢰, 경기를 이끌 권한을 함께 맡겼다. 이강인도 왼발의 창의성에 오른발의 과감함과 아틀레티코 특유의 투쟁심을 더하며 그 믿음에 답하고 있다.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말이 있다. 천리마도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야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있다는 뜻이다. PSG에서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던 이강인은 시메오네를 만나 공격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가장 익숙한 왼발을 넘어 오른발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오사수나전의 오른발 골은 ‘왼발의 달인’이 넣은 의외의 한 골이 아니다. 자신의 경계를 넘어선 한 선수와 그 가능성을 믿고 무대를 내준 감독이 함께 만든 성장의 장면이다. 이강인은 지금 그리즈만의 7번을 물려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 왼발에 오른발을 더하고, 재능에 책임을 더하며 자신만의 7번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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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더팩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