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생 신화' 최익성의 KBO 인간 승리... "첫 안타도 마지막도 대타 홈런" ('천보성의 한끗야구')
출처:채널 '천보성의 한끗야구'(MHN 장샛별 기자) KBO 리그의 굵직한 한 획을 그은 두 전설, ‘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과 ‘연습생 신화의 주인공’ 최익성이 정반대의 야구 인생을 회고하며 묵직한 감동과 뜨거운 여운을 선사했다.지난 9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천보성의 한끗야구’에서는 현재 야구 꿈나무들을 위한 재능 기...

(MHN 장샛별 기자) KBO 리그의 굵직한 한 획을 그은 두 전설, ‘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과 ‘연습생 신화의 주인공’ 최익성이 정반대의 야구 인생을 회고하며 묵직한 감동과 뜨거운 여운을 선사했다.
지난 9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천보성의 한끗야구’에서는 현재 야구 꿈나무들을 위한 재능 기부에 힘쓰고 있는 장호연 감독과 후배 양성 및 육성에 전념하고 있는 최익성 감독이 게스트로 출연해 파란만장했던 현역 시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이날 두 사람은 선수 시절을 상징했던 독특한 별명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대학 시절 선배가 붙여준 별명 ‘짱꼴라’로 유명한 장호연은 “마운드 위에서 섬세하고 꼼꼼하게 플레이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선배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반면 여러 구단을 거치며 ‘저니맨’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최익성은 “현역 선수 시절에는 그 별명이 그저 정처 없이 떠도는 ‘떠돌이’ 신세를 뜻하는 것 같아서 정말 지독하게도 싫었다”라며 당시 가슴속에 맺혔던 설움을 고백했다.

특히 두 사람의 극명하게 엇갈린 선수 생활의 궤적은 ‘개막전’ 이야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현역 시절 통산 9차례나 팀의 개막전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6승 2패라는 경이로운 대기록을 남기며 ‘개막전의 사나이’라 불렸던 장호연. 그는 “20년 넘게 프로 선수 생활을 해도 개막전 마운드에 단 한 번도 서보지 못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구단과 감독님들이 믿고 많이 내보내주신 덕분”이라며 겸손함을 표하면서도, “신인 시절 개막전 등판을 통보받았을 때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밤새 잠도 못 이뤘다”라고 회상했다.

이에 최익성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저는 바닥에서 시작한 ‘연습생’ 출신이라, 13년 프로 생활 동안 개막전 선발로 뛴 적이 아마 딱 한 번 있었나 싶다”라며 말을 흐려 현장을 숙연하게 했다. 그러나 최익성의 야구 인생은 그 어떤 엘리트 선수보다 뜨거운 ‘집념의 신화’였다. 중학교 2학년이라는 턱없이 늦은 나이에 처음 글러브를 쥐었던 그는, 지명받지 못한 절망 속에서도 홀로 프로 구단 입단 테스트를 찾아가 당당히 바늘구멍을 뚫고 프로 유니폼을 입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최익성은 “‘1타수 1안타 1홈런’이라는 각오로 매 타석을 마지막처럼 여겼다. 지금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을 받지 못해 낙담하는 후배들에게 언제나 이 정신을 가르친다”라는 단단한 신념을 전했다. 실제로 그는 프로 데뷔 첫 안타를 대타 홈런으로 장식한 데 이어 은퇴 직전 마지막 안타 역시 대타 홈런으로 장식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또한 한국시리즈 역사상 첫 타석에서 초구 홈런을 터뜨리는 KBO 최초의 대기록은 물론, KIA 타이거즈 구단 역사상 ‘팀 1호 홈런’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새기는 등 불굴의 의지로 써 내려간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입증했다.

한 구단에서만 묵묵히 롱런했던 ‘원클럽맨’ 장호연은 숱한 트레이드의 풍파를 견뎌낸 최익성을 향해 진심 어린 존경을 보냈다. 장호연은 “요즘 프로야구에서는 트레이드가 선수의 가치를 인정받는 긍정적인 기회로 통하지만, 우리 시절의 트레이드는 사실상 ‘팀에서 내쳐지는 방출’이나 다름없는 낙인이었다. 그 모진 시선을 온몸으로 견디며 방황했을 최익성의 고통과 외로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라며 깊이 공감했다. 최익성은 그런 경험이 있기에 얻을 수 있던 값진 경험들이 많았다며 회고했다.
출처: MHN스포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