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라 부르면 돌아선다… 아시안게임 현장의 '호칭 딜레마' [스포츠MSG]

'북한'이라 부르면 돌아선다… 아시안게임 현장의 '호칭 딜레마' [스포츠MSG]

편집자주정치, 사회, 경제, 산업과 얽힌 흥미진진 스포츠 이슈를 전해드립니다.리유일 북한 내고향축구단 감독이 지난 5월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FC위민과의 2025~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앞두고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수원=강예진 기자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개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산업과 얽힌 흥미진진 스포츠 이슈를 전해드립니다.

리유일 북한 내고향축구단 감독이 지난 5월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FC위민과의 2025~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앞두고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수원=강예진 기자
리유일 북한 내고향축구단 감독이 지난 5월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FC위민과의 2025~26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앞두고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수원=강예진 기자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개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큰 대회 취재를 준비하다 보면 경기 일정부터 숙박과 이동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 대회를 앞두고 또 하나의 고민이 머릿속 한 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로 북한 선수단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선수단은 물론 취재진도 대회 기간 경기장 곳곳에서 불한 선수단과 마주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축구와 역도, 탁구, 레슬링 등 14개 종목에 180여 명의 선수단을 파견합니다. 14일 시작되는 여자축구에서는 우승까지 내다보고 있어요. 한국과 같은 조에 편성돼 있어 경기장 안팎에서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문제는 호칭입니다. 한국 취재진이 "북한은…" 또는 "북측 선수는…"으로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차갑게 돌아설 그들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거든요. 실제 국제 스포츠 현장에서 호칭 문제는 거대한 벽이 됐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말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데 따른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여자 복싱 임애지(오른쪽)가 2024년 8월 프랑스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54kg급 시상식에서 자신이 획득한 동메달을 보고 있다. 왼쪽은 함께 동메달을 획득한 북한 방철미. 파리=서재훈 기자
한국 여자 복싱 임애지(오른쪽)가 2024년 8월 프랑스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54kg급 시상식에서 자신이 획득한 동메달을 보고 있다. 왼쪽은 함께 동메달을 획득한 북한 방철미. 파리=서재훈 기자

복싱 국가대표로 선발됐다가 부상으로 출전이 무산된 임애지, 체조대표팀 여서정 등 국제 대회에서 북한 선수들과 자주 마주했던 선수들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까지는 북한 선수들과 대화를 했지만, 2023년 항저우 대회를 기점으로 그들의 태도가 확 돌변했다고 합니다. 언어가 통하니 대회 현장에서 만나면 인사도 하고 때론 정이 쌓였는데, 갑자기 달라진 태도가 우리 선수들도 적잖이 당혹스러웠을 법합니다.

실제 지난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년 파리 올림픽 예선에서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은 한국 취재진이 '북한'이나 '북측'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공식 국호를 사용하지 않으면 답변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습니다. 5월 내고향여자축구단 우승 기자회견에서도 '북한' '북측'이라는 호칭이 나오자, 리유일 내고향 감독과 선수들이 질의응답을 중단하고 퇴장하는 일까지 발생했죠.

그렇다고 북한 선수단의 요구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통일부 업무보고 등을 통해 남북을 '한조(한국·조선) 관계'로 칭하며 북한의 공식 국호 사용 문제를 공론화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용어 하나로 정쟁의 대상이 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펼치기도 했죠.

북한의 공식 국호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 헌법 체계와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고 명시합니다.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표현에 정치적·법적 논란이 뒤따르는 이유입니다. 이 대통령도 취임 이후 북한을 ‘북한’ ‘북측’이라고 불러 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힌트는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5월 23일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북한’ 등의 표현 없이 “우승을 차지한 내고향여자축구단 선수 여러분께 진심 어린 축하를 전한다”며 “공은 둥글고, 우리는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실제 기자회견에서도 국호를 아예 언급하지 않은 질문에는 북한 선수단도 문제 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17일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해방 81돌 경축 국립교예단 종합 교예공연'이 전날 평양교예극장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국립교예단 관계자들과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김 위원장은 같은 날 진행된 체육문화 행사에도 참석해 수영과 다이빙 등 경기를 관람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17일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해방 81돌 경축 국립교예단 종합 교예공연'이 전날 평양교예극장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국립교예단 관계자들과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김 위원장은 같은 날 진행된 체육문화 행사에도 참석해 수영과 다이빙 등 경기를 관람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그러나 국호를 생략한다 한들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근래 북한이 한국 선수단과 취재진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뚜렷해졌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도 일본에 파견되는 선수단에 고강도 '사상 무장' 지침이 내려졌다고 보도했거든요. ‘적국’인 일본에서 선수단의 사상적 변질과 탈선을 원천 봉쇄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합니다.

이념을 넘어선 교류와 화합의 장으로 여겨지는 게 국제 스포츠 무대입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남북 탁구 선수들이 함께 찍은 '스마트폰 셀피'도 올림픽 무대였기에 가능했죠. 일본도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독립적 제재로 북한 국적자의 입국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지만, 스포츠대회 참가에는 예외를 인정합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이 어느 대회보다도 남다른 활약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 헌법 개정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우리는 핵보유국'이라는 명확한 자신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라면서 "코로나19 확산 이후 북한이 체제 결속과 선전 수단으로 스포츠 성과를 중요시해 온 만큼, 경기 매너나 인터뷰 등을 통해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발신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지금 북한은 냉전 시대 이후 아주 역대급으로, 가장 큰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시점"이라면서 "(이번 대회가) 김정은 국무위원장 중심의 북한을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무대"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을 상대로는 '적대적 두 국가'를 한층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정상 국가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무대로 아시안게임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두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결국 이번 대회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전망입니다. 불과 7, 8년 전만 해도 우리 선수들과 허물없이 어울렸던 북한 선수들은 과연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단과 취재진을 어떻게 대할까요. 메달 경쟁 못지않게 눈여겨볼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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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