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번의 도전, 10년의 인내… 장은수가 증명한 ‘버티는 삶의 위대함’

187번의 도전, 10년의 인내… 장은수가 증명한 ‘버티는 삶의 위대함’

“드디어 해냈다”…9일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 골프앤리조트에서 막을 내린 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데뷔 10년만에 생애 첫 우승을 거둔 장은수가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킨 뒤 양팔을 들어 올리고 있다. KLPGA 세계 골프계에는 화려한 신인의 등장이 매년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팬들의 가슴을 진정으로 울리는 순...

“드디어 해냈다”…9일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 골프앤리조트에서 막을 내린 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데뷔 10년만에 생애 첫 우승을 거둔 장은수가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킨 뒤 양팔을 들어 올리고 있다. KLPGA
“드디어 해냈다”…9일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 골프앤리조트에서 막을 내린 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데뷔 10년만에 생애 첫 우승을 거둔 장은수가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킨 뒤 양팔을 들어 올리고 있다. KLPGA

세계 골프계에는 화려한 신인의 등장이 매년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팬들의 가슴을 진정으로 울리는 순간은 오랫동안 침묵했던 은근한 기다림이 결실을 맺을 때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라이언 오툴(미국)은 데뷔 후 228번째 대회, 10년 만에 첫 우승컵을 품에 안으며 전 세계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끊임없이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밀려나면서도 골프채를 놓지 않았던 그의 집념은 ‘10년’이라는 세월이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듬어낸 고독한 단련의 과정이었음을 증명해낸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도 마침내 그 감동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2017년 화려하게 신인왕을 차지한 이후 무려 10년, 정규투어 187번째 출전 대회, 스물 여덟이라는 적잖은 나이에 비로소 정상에 오른 장은수가 그 주인공이다.

장은수는 9일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 골프앤리조트에서 열린 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총상금 10억 원) 최종라운드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솎아내 최종 합계 14언더파 274타로 생애 첫 정규투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87경기 만에 거둔 첫 승. 경기 직후 동료들의 축하 물세례를 받으며 양팔을 번쩍 들던 장은수의 눈에는 기쁨과 그간의 설움이 뒤섞인 눈물이 고였다.

2017년, 장은수의 시작은 화려했다. 우승은 없었지만 탄탄한 기량으로 박민지, 김수지 등 쟁쟁한 라이벌을 제치고 KLPGA 투어 신인상을 거머쥐며 한국 골프의 초대형 기대주로 눈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신인왕이라는 왕관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스스로에 대한 욕심이 과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완벽한 플레이를 만들고자 스윙과 기술에 변화를 주었던 시도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밸런스는 무너졌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2020시즌을 끝으로 정규투어 시드권을 잃으며 2부 투어인 드림투어로 강등됐다. 신인왕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드림투어와 정규투어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시련이 이어졌다. 장은수는 당시를 돌아보며 “다시 드림투어로 내려갔을 때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것 같은 허무함과 막막함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9일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 골프앤리조트에서 끝난 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장은수가 공식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KLPGA
9일 제주 서귀포시 테디밸리 골프앤리조트에서 끝난 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장은수가 공식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KLPGA

2024시즌이 끝났을 때 다시 정규튜어 시드를 잃은 장은수에게는 깊은 절망감이 몰려왔다. “이제 나는 정말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급기야 코치에게 “이제 골프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며 선수 생활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순간 그를 잡아준 것은 주변의 묵묵한 믿음이었다. 코치는 “지금 골프가 정말 많이 좋아졌다. 여기서 그만두면 평생 후회한다”며 장은수를 끝까지 붙잡았다. 10년을 한결같이 곁에서 지켜봐 준 매니지먼트사 대표와 가족들의 헌신 역시 그가 다시 장갑을 끼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장은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갔다. 2025시즌 드림투어 상금순위 7위를 기록하며 다시 정규투어 시드권을 확보했다. 이번엔 욕심을 내려놓고 경기 자체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스윙에 대한 지나친 집착 대신 단단해진 멘탈과 몸 관리,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지난 6월 인카금융 더헤븐 마스터즈 준우승으로 샷감을 끌어올린 그는 마침내 하반기 첫 대회인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결실을 맺었다.

우승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15번 홀까지 팽팽한 우승 경쟁이 이어졌고,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는 티샷이 우측 벙커에 빠지며 최대 위기를 맞았다. 벙커에서 시도한 세컨드 샷마저 임팩트가 얇게 맞아 아찔한 순간을 연출했지만, 공은 행운처럼 그린 위에 올라탔다. 마지막 승부처에서 덤덤하게 파 세이브에 성공한 장은수는 마침내 1타 차 우승을 확정 지었다.

장은수는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10년 동안 투어 생활을 하며 기쁜 일보다 슬프고 힘든 기억이 훨씬 많았다”며 “그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준 매니지먼트 대표님과 부모님, 코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시작할 때 세운 ‘생애 첫 승’이라는 목표를 이뤄낸 장은수의 다음 목표는 이제 ‘시즌 2승’이다. 투어 10년 차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여전히 골프를 너무나 사랑하는 젊은 선수라고 말한다.

“남들은 나이가 많다고 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골프를 정말 좋아하는 선수이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필드를 누비고 싶다.”

10년의 절망을 버텨내고 마침내 피워낸 장은수의 첫 승 꽃봉오리는,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내는 수많은 이들에게 그 어떤 화려한 신인의 우승보다 깊고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서귀포(제주도)=정대균골프선임기자([email protected])

출처: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