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96라인'의 불편한 동행…8년 갈등의 내막
[한준 풋볼아시안 발행인 [email protected]] 2018년 라커룸 충돌부터 주장 교체론까지…대표팀에 무슨 일이 감독도 회장도 바뀌었지만 봉합되지 않은 균열…협회 책임론 확산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협회 리더십의 교체로 이어졌다. 정몽규 회장이 대회 전 예고대로 물...
[한준 풋볼아시안 발행인 [email protected]]
2018년 라커룸 충돌부터 주장 교체론까지…대표팀에 무슨 일이 감독도 회장도 바뀌었지만 봉합되지 않은 균열…협회 책임론 확산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협회 리더십의 교체로 이어졌다. 정몽규 회장이 대회 전 예고대로 물러났고, 홍명보 감독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협회장의 실패, 감독의 실패로 이어졌는데, 지금 그 세 번째 책임자로 주장 손흥민이 거론되고 있다. 10월6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손흥민이 59번째 A매치 골로 차범근을 넘어선 바로 그날, '96라인' 김민재·황인범·황희찬의 대표팀 동반 은퇴설이 터졌다. 황인범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김민재는 답하지 않았고, 황희찬은 출국길에 결정된 게 없다는 말만 남겼다.
국내 복수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96라인으로 불리는 세 선수는 회장도 바뀌고 감독도 바뀌었는데 '변한 게 없다'며 대표팀을 떠나려는 결심을 했다. 당사자들이 직접 밝힌 바 없지만,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대표팀의 월드컵 실패에 주장 책임론을 꺼낸 것이다.

균열의 시작은 2018년…손 놓은 협회
대표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에 따르면, 세 선수가 원한 건 손흥민의 대표팀 은퇴가 아니었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주장을 바꿔 분위기를 쇄신하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소집 기간에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감독에게 먼저 뜻을 전했다. 임시 신분이라 급격한 변화는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감독을 건너뛴 건 아니었다는 얘기다. 우즈베키스탄전 뒤 일부 대표팀 동료에게 은퇴 의사를 전한 게 기사로 보도되자 자정까지 현영민 전력강화위원장과 마주 앉았다. 우루과이전 참패 뒤 김민재가 동료들의 태도를, 베네수엘라전 뒤 황인범이 협회와 대표팀 운영을 공개적으로 꼬집은 것도 같은 흐름이다.
여론은 싸늘하다. 대표팀 은퇴를 협상 카드처럼 꺼내든 태도가 괘씸하다는 반응이 쏟아졌고, 스스로 물러날 게 아니라 아예 뽑지 말라는 격앙된 목소리까지 나온다. 시기도 나빴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금메달 직후 이기혁·양민혁의 병역 면제 발언과 박승수의 전역모 사진이 태극마크의 품격을 실추시켰다는 비판 여론이 이미 불붙은 상태였다. 임시 체제를 끝내고 모레노에게 힘을 실어달라는 요구였다면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 주장을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세 선수는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불똥은 엉뚱하게 이강인에게도 튀었다. 96라인과 손잡고 주장을 몰아내려 했다는 건데, 결론적으로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 2024년 '탁구 사건'은 이강인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어린 세대를 대표해 항변하다 벌어진 일에 가까웠다. 그 후 이강인은 이런 갈등에 일절 발을 담그지 않고 모두와 두루 잘 지내왔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손흥민에게 직접 프리킥을 권하고 낮게 깔아 차라고 조언한 것도, 월드컵 체코전 뒤 황인범의 동점골 장면에서 손흥민의 움직임을 굳이 평가한 것도 그였다. 손흥민 역시 우루과이전 58호골을 "강인이의 골"이라며 후배에게 공을 돌렸다.
실제 대표팀 균열은 2018년에 시작됐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였다. 처음 주장 완장을 찬 26세 손흥민은 뒤늦게 합류해 후배들과 가까워지려 애썼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 1대2로 패한 뒤 라커룸에서 후배들에게 크게 화를 냈고, 그를 동경하던 어린 선수 일부가 그날 실망했다는 후문이 기자들 사이에 돌았다. 이듬해 열린 UAE 아시안컵 내내 손흥민은 멀어진 후배들과의 관계로 잠을 설칠 만큼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배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유럽 생활이 길어 대표팀에 사적으로 가까운 이가 많지 않던 손흥민은 이때부터 동년배나 선참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었다는 후문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2701호 논란'은 96라인과의 문제가 아니었다. 손흥민이 개인 트레이너 기용을 밀어붙인 건 몸 관리 때문이었다. 96라인 선수들 일부도 그 트레이너에게 몸을 맡겼고, 황희찬은 포르투갈전에서 손흥민의 패스를 받아 결승골을 넣었다. 금이 간 건 선수단과 협회의 관계였다. 선수단을 휘어잡을 카리스마 있는 한국인 감독이 필요하다는 기류가 협회 안에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2024년 아시안컵에서는 선수단이 손흥민 등 92년생 라인, 김민재 등 96년생 라인, 그리고 이강인 중심의 어린 세대로 나뉘었다. 충돌의 축은 가장 어린 쪽과 가장 나이 많은 쪽이었다. 어린 선수들은 주장이 중재해 주길 바랐지만, 손흥민이 고참 선수들의 목소리만 대변한다고 느꼈다. 탁구는 고참과 협회 직원도 함께 쳤는데 어린 선수들만 불려가 꾸중을 들으면서 쌓인 감정이 터졌다. 손흥민이 질책한, 대회 기간에 밤새 카드게임을 한 다른 선수의 상대 역시 협회 직원이었다고 알려졌다. 선수를 관리해야 할 사람들이 함께 놀고 있었다. 이때 사태를 진정시키려 애쓴 쪽이 96라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캡틴 박지성 곁에는 이영표가 있었다
북중미 월드컵 때의 홍명보호에서는 체력 문제로 92라인의 비중이 줄고 96라인 중심의 세대 교체가 진행됐다. 손흥민은 이른 교체에 속이 상했겠지만 팀을 앞세웠다. 선발에서 빠진 경기에서도 수분 보충 시간마다 후배들을 찾아갔다. 주장 완장을 찬 김민재에게 전술을 짚어줬고, 황인범의 목에는 무더위 속 찬 수건을 걸어줬다. 문제는 첫 경기 전 일부 취재진의 병역 특례 조롱 발언이 촉발한 인터뷰 보이콧이었다. 고참과 후배들의 생각은 달랐고, 그 스트레스가 원팀을 갉아먹었다.
이 대목에서 92년생 고참인 이재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원래 후배들과 가까웠던 그는 월드컵에서 손흥민 편에 강하게 섰고, 그 뒤로 후배들과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리를 놓으려다 오히려 한쪽에 선 사람으로 비친 것이다. 어쩌면 이재성은 과거 박지성 곁의 이영표처럼 주장과 후배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하려 했던 게 아닐까. 다만 박지성 주장 시절 후배들은 맨유의 박지성을 올려다봤다. 유럽 정상급 무대를 밟은 지금의 96라인에게 손흥민은 존경하는 선배일지언정 우러러볼 대상은 아니다. 완충재 한 명으로 메우기엔 간극이 넓었다.
손흥민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분열을 감지했다면 주장으로서 먼저 봉합에 나섰어야 했다. 후배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건 그의 몫이다. 언론과 거리를 둔 탓에 그를 둘러싼 부정적 이야기가 기자들 사이에 먼저 퍼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황인범과 김민재는 부주장이었다. 리더십을 탓하기 전에 팔로어십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불만이 있었다면 손흥민과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풀었어야 했다. 협회는 더 할 말이 없다. 벤투 시절 외박 허용으로 느슨해진 규율, 선수와 어울려 노는 직원, 대표팀 내 갈등을 중재할 적임자로 여겨 감독으로 선임한 클린스만과 홍명보까지 내리 선수단 통솔에 실패했다. 협회와 감독, 주장, 부주장, 그리고 모든 대표 선수가 이 실패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국가대표이자 프로라면 경기력과 결과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96라인은 주장 교체를 원한 이유를 국민 앞에 직접 밝혀야 한다. 협회는 정식 감독 선임과 함께 규율과 미디어 대응 원칙을 시스템으로 세워야 한다. 손흥민을 성역화하는 것도, 에이징 커브 프레임으로 몰아내려는 것도, 미디어 앞에서와 뒤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는 확인되지 않은 일각의 주장으로 악마화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손흥민은 여전히 자기 포지션에서 한국 최고의 선수다. 내년 1월 아시안컵까지 석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손흥민이 대표팀에 있는 동안 아시안컵을 들어 올리려면, 지금 필요한 건 주장 교체가 아니라 진솔한 대화다.
출처: 시사저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