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 세트는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경기는 이기지 못했을까?' 코리아오픈에서 다시 생각해 본 한국 여자테니스
코리아오픈에서 나란히 2회전에 진출한 백다연 구연우 박소현.2026 코리아오픈 테니스대회(WTA 250)는 한국 여자테니스에 오래 기억될 만한 대회가 되었다. 박소현, 구연우, 백다연이 나란히 본선 첫 경기를 통과했다. WTA에 따르면 투어 대회에서 한국 여자선수 세 명이 동시에 2회전에 오른 것은 1984년 리우데자네이...

2026 코리아오픈 테니스대회(WTA 250)는 한국 여자테니스에 오래 기억될 만한 대회가 되었다. 박소현, 구연우, 백다연이 나란히 본선 첫 경기를 통과했다. WTA에 따르면 투어 대회에서 한국 여자선수 세 명이 동시에 2회전에 오른 것은 1984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라질오픈 이후 42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물론 이것 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필자가 이번 대회를 바라보면서 더 관심을 가진 것은 기록 자체가 아니었다.
한국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어느 정도까지 경쟁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면, 이제는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바로 그것이다.
이길 수 없었던 것인가, 끝내지 못했던 것인가
이번 대회의 경기들을 모두 같은 유형으로 묶을 수는 없다.
백다연의 2회전은 세계 100위권 선수와의 경기력 차이가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났다. 박소현은 란라나 타라루디와 첫 세트를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갔지만 이후 두 번째 세트를 0-6으로 내줬다.
그러나 구연우의 경기는 조금 달랐다. 세계 60위권의 엘레나 가브리엘라 루세를 상대로 첫 세트를 6-2로 가져갔고 두 번째 세트도 4-2까지 앞섰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60위권 선수를 상대로 6-2, 4-2까지 갈 수 있었다면 '세계적인 선수와는 실력 차이가 크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선수와 경쟁할 능력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경기력을 끝까지 유지하고 경기를 승리로 완성하는 능력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이 부족한가'가 아니라 더욱 구체적으로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달라졌는가'이다.

한국 선수는 정말 체격 때문에 안 되는 것인가
한국 선수가 세계무대에서 패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체격이다. 키가 작고, 서브가 약하며, 스트로크의 파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발렌카나 리바키나의 경기를 보면 이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높은 타점에서 내리꽂는 서브와 강력한 스트로크를 보면 '한국 선수가 저런 테니스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선수가 사발렌카처럼 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사발렌카처럼 치지 않고도 세계 50위 안에 들어갈 방법은 없는가.
모든 선수가 같은 테니스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키가 크고 힘이 좋은 선수에게 유리한 테니스가 있다면, 빠르고 민첩하며 타이밍이 좋은 선수에게 유리한 테니스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신체조건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조건에 가장 적합한 승리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작은 선수의 테니스'라고 부르고 싶다.
테니스는 시공간을 지배하고 차지하는 스포츠
이번 대회에서 필자는 박소현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체격이 작은 동양 선수가 자신보다 체격이 큰 선수를 상대할 때 본인만의 위닝 전략(Winning Strategy)이 있는가."
박소현은 빠르게 치고, 때로는 템포를 바꾸면서 상대의 리듬을 빼앗으려고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필자는 이 대답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에 '작은 선수의 테니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보다 강하게 칠 수 있다면 더 강하게 치는 경쟁만 할 필요는 없다.
상대보다 먼저 친다. 상대가 준비하기 전에 친다. 라이징볼(Rising Ball)을 이용해 상대의 시간을 빼앗는다. 공의 속도뿐 아니라 높이와 깊이를 바꾼다. 몸쪽으로 보내 상대의 긴 스윙을 방해한다. 서브의 최고 속도보다 코스와 다음 공을 연결하는 서브 플러스 원(Serve+1)을 정교하게 만든다. 리턴에서는 상대의 강한 서브를 더 강하게 되받아치려고 하기보다 깊고 빠르게 돌려놓아 상대의 첫 공격을 무력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베이스라인 위치를 쉽게 뒤로 내주지 않는다.
이것은 힘이 약한 선수가 수비만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파워의 부족을 시간과 공간의 지배로 바꾸자는 것이다. 테니스에서 상대에게서 0.2초의 준비시간을 빼앗는 것도 하나의 파워가 될 수 있다.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은 '시설'보다 선수 만드는 방식
그렇다면 우리와 신체조건이 비슷한 일본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본테니스협회(JTA)는 세계 톱100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는 선수를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세계 톱50을 목표로 하는 선수를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일본의 아지노모토 내셔널 트레이닝 센터는 단순히 좋은 코트가 있는 합숙소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선수와 코치뿐 아니라 의사, 영양사, 경기분석과 전략 담당자, 컨디셔닝 및 환경 대응 전문가 등이 선수 육성에 관여한다. 일본테니스협회는 이곳을 선수 육성 노하우를 '개발하고 축적하는 거점'으로 설명한다. 즉 한 선수가 패했을 때 단순히 코치가 "포핸드가 안 좋았다"거나 "체력이 부족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 포핸드가 흔들렸는지, 어떤 상황에서 리턴이 짧아졌는지, 체력저하가 기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상대가 어떤 패턴으로 무너뜨렸는지를 여러 분야에서 살펴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이 있다. 일본테니스협회가 어린 선수 지도에서 명시적으로 강조하는 목표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생각하며 플레이하는 자립형 선수'이다. 코치가 답을 먼저 알려주는 대신 질문을 통해 선수가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프로테니스에서는 코치가 대신 공을 쳐줄 수도, 중요한 순간마다 작전을 대신 결정해줄 수도 없다. 결국 세계적인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스트로크뿐 아니라 경기 중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능력이다. 이 부분은 우리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배워야 할 것은 '중국식 시스템'이 아닐 수도 있다
중국의 경우는 더욱 흥미롭다. 과거에는 흔히 중국 스포츠의 성공을 거대한 선수층과 국가주도 엘리트 시스템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 테니스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중국 국가체육총국은 리나와 정친원 등을 배출한 후베이의 테니스 육성방식을 전통적인 국가 시스템과 직업화·국제화를 결합한 일종의 '혼합형 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유망한 선수에게 국제적인 코칭과 프로투어 환경을 연결하는 것이다.
정친원의 성장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중국에서 기본기를 갖춘 뒤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훈련 거점을 옮겼고, 페레 리바(Pere Riba)와 함께 훈련했다.
흥미로운 것은 리바가 정친원에게 단순히 더 강한 스트로크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친원은 자신의 변화에 대해 원래 강하게 치는 것은 잘했지만 코치가 풋워크, 전술, 일관성, 그리고 어느 공을 강하게 쳐야 하는지 선택하는 능력을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다. 강하게 칠 수 있는 선수에게 더 강하게 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언제 강하게 칠 것인가를 가르친 것이다.
그리고 2026년에도 흥미로운 사례가 있었다. 정친원은 토론토에서 부진한 뒤 신시내티 대회를 포기하고 미국 아이엠지 아카데미에서 별도의 집중 훈련 기간을 가졌다. 경기 수를 늘리는 대신 경기력을 다시 만드는 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 US오픈에서 8강까지 진출했다.
한국 테니스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중국처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회 출전 자체가 훈련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이 곧 경험은 아니다
한국 테니스에서 유망주 육성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언제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해외대회에 많이 출전시켜야 한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많이 경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과 협회의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빠져 있다.
그 경기에서 '무엇을 배웠는가'이다.
20개 국제대회에 출전해 비슷한 방식으로 20번 패했다면 그것을 20개의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히려 같은 실수를 20번 반복했을 수도 있다.
구연우가 6-2, 4-2에서 패했다면 다음날 필요한 것은 단순한 휴식과 다음 대회 항공권만이 아니다.
6-2까지 무엇이 잘됐는가. 4-2 이후 무엇이 변했는가. 첫 서브 성공률이 떨어졌는가. 세컨드 서브가 공격당하기 시작했는가. 리턴 위치가 뒤로 밀렸는가. 랠리가 길어졌는가. 공격해야 할 공을 안전하게 넘기기 시작했는가. 상대가 전술을 바꿨는데 대응하지 못했는가. 혹은 실제로 체력이 떨어졌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더 많은 지원이 아니라 '정밀한 지원'이 필요
필자는 한국 테니스에는 당연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원 액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지원의 정밀도라고 생각한다. 한 선수에게 1억원을 지원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돈으로 해외대회 몇 개를 더 보내는 것도 지원이다.
그러나 선수의 서브 동작을 분석하고, 경기 데이터를 축적하고, 체력과 회복을 측정하고, 스포츠심리 전문가와 협력하고, 세계적인 코치에게 일정 기간 집중적인 지도를 받게 하는 것도 지원이다. 둘은 같은 1억원이라도 결과가 전혀 다를 수 있다.
일본이 내셔널 트레이닝 센터에 코치뿐 아니라 의학·영양·분석·전략 등 복합적인 지원 인력을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역시 최근 후베이 지역의 선수육성에서 국제적인 지도자와 재활전문가 등이 결합한 복합 지원팀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어쩌면 '선수 몇 명을 더 해외에 보내는 것'보다 선수 한 명의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주는 시스템일지 모른다.

'한국형 테니스'를 만들어볼 수는 없을까?
필자는 오히려 여기에서 조금 더 과감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한국 선수의 체격이 서구의 파워 플레이어들과 다르다면 왜 그들을 흉내내야 하는가? 우리 선수들에게 적합한 경기 모델을 연구하면 되지 않을까?
빠른 풋워크. 빠른 준비. 라이징볼. 깊은 리턴. 빠른 방향 전환. 템포 변화. 상대에게 준비시간을 주지 않는 공격. 최고 속도보다 정확성과 다음 공을 고려한 서브. 그리고 경기 도중 상대의 변화를 스스로 읽어내는 전술적 판단.
이 가운데 어떤 조합이 박소현에게 가장 적합한지, 어떤 조합이 구연우에게 적합한지, 어떤 조합이 백다연에게 적합한지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정밀한 지원'이 필요하다.
모든 선수에게 똑같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더 시키고, 서브 속도를 높이고, 해외대회 출전 횟수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이 선수는 무엇으로 세계 50위 선수를 이길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그 답을 찾았다면 그 무기를 집중적으로 세계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일본과 중국에서 진짜 배워야 할 것
결국 일본과 중국의 사례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돈도 아니고 시설도 아니다. 일본에서는 육성 단계에서부터 선수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강조하고, 국가 훈련거점에 스포츠과학과 경기분석의 노하우를 축적한다. 중국은 기존의 국가 육성체계 위에 개인화·직업화·국제화된 프로투어 시스템을 접목하고 있다.
두 나라의 방식은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은 있다.
선수를 그냥 많이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기는 선수로 만들 것인가'를 설계한다는 점이다.
한국도 이제 '좋은 선수를 찾아 해외에 많이 보내면 언젠가 스타가 나오겠지'라는 기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선수를 발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발견한 선수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이다.

코리아오픈이 남긴 것은 희망보다 숙제
이번 코리아오픈에서 박소현, 구연우, 백다연이 2회전에 진출한 것은 분명 한국 여자테니스에 반가운 결과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그 다음 경기들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그 경기들은 한국 선수들이 세계무대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준 경기였기 때문이다.
한 세트를 이길 수 있다. 세계 60위권 선수를 상대로 6-2를 만들 수도 있다. 첫 세트를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막연하게 "세계의 벽은 높았다"고 말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왜 그 다음 단계에서 무너졌는지를 찾아야 한다.
체력이라면 체력을 보완하면 된다. 서브라면 서브를 수정하면 된다. 경기 운영이라면 경기 운영을 바꾸면 된다. 전술적 대응 능력이라면 그것을 훈련하면 된다.
그리고 신체조건 때문에 파워 경쟁에서 불리하다면, 파워만으로 승부하지 않는 경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필자가 코리아오픈을 보면서 생각한 한국 여자테니스의 다음 과제다.
한국 선수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대회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지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이 선수를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더 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이 선수는 무엇으로 세계적인 선수를 이길 것인가."
그 질문에 선수마다 다른 답을 만들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한국 여자테니스가 찾아야 할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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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테니스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