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를 잃는 좌절 딛고 더 위대한 투수가 됐다…임찬규, 90패가 만든 100승
출처:LG 트윈스(MHN 정철우 기자) 150㎞를 던지던 투수가 140㎞도 나오지 않는 자신의 공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떨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머릿속에는 타자를 힘으로 눌렀던 자신의 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똑같이 힘껏 던져도 포수 미트까지 날아가는 공은 10㎞ 이상 느려져 있다. 투수에게...

(MHN 정철우 기자) 150㎞를 던지던 투수가 140㎞도 나오지 않는 자신의 공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떨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머릿속에는 타자를 힘으로 눌렀던 자신의 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똑같이 힘껏 던져도 포수 미트까지 날아가는 공은 10㎞ 이상 느려져 있다. 투수에게 구속 저하는 단순히 전광판에 찍히는 숫자가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한때 가장 자신 있었던 무기가 사라지는 과정이고, 자신이 알고 있던 야구와 결별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민철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그 좌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현역 전성기의 정민철은 당대를 대표하는 강속구 투수였다. 전설적인 포수 박경완 전 LG 코치가 "내가 받아 본 공 중 최고의 패스트볼을 던졌던 투수다. 아직도 대표팀에서 받아 본 정민철의 공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힘으로 타자를 밀어붙일 수 있었고, 알고도 치기 어려운 패스트볼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과 부상 앞에서 그 강속구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선수 생활 후반 정민철의 패스트볼은 140㎞에도 미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당시를 떠올리며 힘껏 던졌는데도 힘없이 날아가는 패스트볼을 보면서 여러 차례 좌절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구속이 떨어지면서 더 정교한 제구가 필요했고 완급 조절과 볼 배합까지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특히 힘으로 상대를 윽박질렀던 기억이 오히려 자신을 더 힘들게 했다고 했다. 처음부터 빠른 공이 없었던 투수라면 모르겠지만 압도적인 패스트볼을 가져봤던 투수가 그것을 잃은 뒤 완전히 다른 투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찬규가 지금 바로 그 어려운 길에서 답을 만들어내고 있다.

임찬규도 프로 입단 초기에는 빠른 공으로 이름을 알렸다. 150㎞를 넘나드는 패스트볼을 던졌다. 지금처럼 150㎞ 투수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제구가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LG가 그를 마무리로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공 자체가 가진 힘이었다. 스트라이크존에 제대로 들어오기만 하면 쉽게 공략하기 어려운 패스트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강력했던 무기가 사라졌다. 13일 대구 삼성전에 선발 등판한 임찬규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38.5㎞였다. 신인 시절과 비교하면 10㎞ 이상 떨어졌다. 이제 임찬규에게 150㎞는 전광판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 오래전 기억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공은 느려졌는데 투수는 더 강해졌다.
임찬규는 삼성전 승리로 시즌 14승(5패)을 기록하며 개인 최다승을 거뒀던 2023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동시에 LG 소속 투수 최초로 개인 통산 100승 고지에도 올라섰다. 150㎞를 던지던 시절에도 밟지 못했던 곳을 평균 138.5㎞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가 된 뒤 밟았다.

그래서 임찬규의 100승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구속을 잃은 투수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빠른 공으로 타자를 이길 수 없게 되자 제구를 가다듬었다.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방법을 익혔고 구종을 섞는 순서와 높낮이를 고민했다. 공 하나의 위력이 아니라 타석 전체를 설계하는 법을 배웠다. 데뷔 초 '빠르지만 제구가 불안한 투수'였던 임찬규는 이제 빠르지 않은 공으로도 타자를 잡아내고 경기를 지배할 줄 아는 투수가 됐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150㎞의 기억만 붙잡고 있었다면 지금의 임찬규는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힘을 줘도 예전처럼 공이 날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다음 길을 찾을 수 있다. 가장 잘했던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것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정민철이 말했던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투수'가 되는 길을 임찬규도 걸었다.
그 길에는 수많은 실패도 있었다. LG의 전신 MBC 청룡에서 뛰며 통산 106승을 거둔 정삼흠은 자신의 선수 생활을 돌아보며 "100승을 한 것도 자랑스럽지만 더 큰 공부는 121패에서 나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승리가 투수에게 결과를 남긴다면 패배는 숙제를 남긴다. 왜 맞았는지, 왜 무너졌는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도록 만든다.

임찬규에게도 100승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고지에 오르는 동안 90패를 함께 쌓았다. 처음부터 선발투수로 출발한 선수도 아니었다. 불펜과 마무리를 거쳐 선발로 정착했고 좋은 시즌과 좋지 않은 시즌을 반복했다. 2군으로 내려가야 했던 시간도 있었고 자신의 공을 믿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90번의 패배 속에서 하나씩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냈다. 무엇이 통하지 않는지를 배웠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이 통할 수 있는지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90패는 100승의 반대편에 있는 숫자가 아니다. 오히려 100승을 떠받치고 있는 숫자에 가깝다.
젊은 임찬규는 빠른 공을 갖고 있었다. 지금의 임찬규에게는 그때의 구속이 없다. 대신 타자를 읽는 눈과 자신의 공을 다루는 방법, 위기에서 경기를 풀어가는 경험이 생겼다. 150㎞가 사라진 자리에 90번의 패배에서 배운 노하우가 들어섰다.
강속구 투수가 구속을 잃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가장 빛났던 시절과 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상대 타자뿐 아니라 머릿속에 남아 있는 과거의 자신까지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민철이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찬규는 결국 그 싸움에서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150㎞를 던지던 시절보다 더 많은 승리를 만들어내는 투수가 됐다. 13일 대구에서 찍힌 평균 구속 138.5㎞는 그래서 초라한 숫자가 아니다.
한때 150㎞를 던졌던 투수가 이제 140㎞도 되지 않는 공으로 통산 100승을 완성했다. 잃어버린 10㎞를 제구와 완급 조절, 경험과 90번의 패배에서 얻은 공부로 채웠다.
임찬규의 100승이 특별한 이유다. 가장 강했던 무기를 잃었지만, 그는 더 강한 투수가 됐다.
출처: MHN스포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