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번호 ‘72번’에 이런 사연이…“배구 절대 안 돼” 반대했던 부모님, 이제는 아들의 가장 열성적인 팬 됐다
KB손해보험 스타즈 제공 [OSEN=손찬익 기자] 남자프로배구 KB손해보험의 2년 차 미들블로커 임동균(22)의 등에는 조금 특별한 숫자가 새겨져 있다. ‘72’. 배구는 물론 다른 종목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등번호다.그에게 72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자신의 꿈을 누구보다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OSEN=손찬익 기자] 남자프로배구 KB손해보험의 2년 차 미들블로커 임동균(22)의 등에는 조금 특별한 숫자가 새겨져 있다. ‘72’. 배구는 물론 다른 종목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등번호다.
그에게 72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자신의 꿈을 누구보다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부모님을 의미한다.
12일 일본 사카이 전지훈련 현장에서 만난 임동균은 “부모님 두 분 모두 1972년생이라 등번호를 72번으로 정했다”며 “처음에는 내가 배구선수가 되는 걸 반대하셨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지지해주신다. 의미 있는 번호를 달고 성공해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원도 동해 출신인 임동균이 처음 배구공을 잡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또래 선수들과 비교하면 늦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배구의 매력에 빠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배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문제는 부모님의 반대였다. 임동균은 “4살, 3살 터울의 누나 두 명이 있는데 어릴 때 배구를 하다가 일찍 그만뒀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께서는 막내인 나까지 힘든 운동선수의 길을 걷는 걸 원하지 않으셨다. 학교 체육 선생님도 만류하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주변의 만류에도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배구가 너무 좋았다. 그는 “배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꼭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아버지는 배구를 시작한 뒤에는 지지해주셨지만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탐탁지 않아 하셨다”고 웃었다.
부모님의 반대는 오히려 임동균을 더 독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던 만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임동균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했기 때문에 더 악착같이 했다. 결과로 증명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돌아봤다.

늦게 배구를 시작했지만 꾸준히 성장했다. 한양대에 진학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아들의 고집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어머니의 마음도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 부모님은 임동균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그는 “두 분 모두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신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 몸부터 챙겨주시고 아버지는 배구 관련 뉴스나 해외 자료까지 꼼꼼하게 찾아봐 주신다”며 미소 지었다.
그래서 선택한 등번호가 72번이다. 처음에는 아들의 배구를 반대했던 1972년생 부모님. 이제는 누구보다 열성적인 응원군이 된 두 사람을 생각하며 임동균은 코트에 선다.
프로 무대에 입성하며 첫 번째 목표는 이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경쟁이다. 데뷔 시즌에는 코트보다 웜업존을 지키는 시간이 길었다. 이전까지 대부분 주전으로 뛰었던 임동균에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그는 “첫 시즌에는 웜업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그전까지 주전으로 뛴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하지만 그 시간이 오히려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올 시즌에는 더 잘해보자는 생각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번 일본 전지훈련에서도 자신의 약점을 하나씩 채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임동균은 “대학교 때는 공격에 비중을 많이 두다 보니 블로킹 스텝이나 서브 같은 부분이 부족했다”며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한 단계씩 발전해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했던 배구는 어느덧 그의 직업이 됐다. 그리고 이제 그의 등에는 부모님의 출생연도인 ‘72’가 새겨져 있다. 자신을 믿어준 부모님에게 성공으로 보답하겠다는 임동균의 두 번째 프로 시즌이 시작된다. /[email protected]
출처: OS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