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천' 회사원에게 압도당한 '54억' 프로 선수들

'연봉 3천' 회사원에게 압도당한 '54억' 프로 선수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한가위에, 20년만의 '도하 참사' 시즌2가 재현되고 말았다. 전원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전원 사회인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게 충격적인 참패를 당했다.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25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한가위에, 20년만의 '도하 참사' 시즌2가 재현되고 말았다. 전원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전원 사회인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게 충격적인 참패를 당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25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슈퍼라운드 일본과의 경기에서 0-5로 완패했다.

이날 한국은 일본의 좌완 선발 투수 히구치 신에게 철저히 압도당했다. 히구치는 2002년생으로, 지난해 일본 실업야구에서 평균자책점 1.25를 기록하며 최우수 평균자책점상을 수상했던 투수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지난 21일 중국전에서 6이닝 86구를 던지고, 한국전에는 불과 3일 휴식만에 두 번째 등판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타선은 히구치가 마운드에 있었던 7이닝간(92구) 산발 4안타를 뽑아내는데 그쳤다. 6회까지 병살타만 3번이나 기록하면서 득점권인 2루조차 한번도 밟지 못했을 만큼 고전했다. 더구나 히구치가 마운드에서 내려간 8,9회에도 한국 타선은 일본 불펜에게 별다른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믿었던 마운드도 초라하게 무너졌다. 한국 투수진은 이날 경기전까지 조별리그 3경기에서 단 1점만 내주며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전에서는 선발 투수 소형준(KT)이 초반부터 흔들리며 3회 집중타를 얻어맞고 3점을 내줬다. 6회에는 필승조인 조병현(SSG)과 박영현(KT)이 각각 적시타를 맞고 추가 2실점을 내주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한국 야구가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에 패한 것은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이후 20년 만이다. 한국이 병역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에 프로 정예 멤버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리는 것과 달리,일본은 전통적으로 사회인야구 선수들을 출전시키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일본 선수들의 공식 소속은 도요타자동차와 ENEOS, 오지, NTT서일본 등, 기업에서 급여를 받고 활동하는 '회사 직원'들이다.

한국야구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꼽히는 '도하 참사'보다도, 어쩌면 이번 '도요하시 참사'가 몇 배 더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한국은 겉보기에 이름값은 화려했지만 선수선발과 구성에서부터 각종 문제가 많았고, 전력분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만큼 방심했던 측면이 컸다. 2006년의 대표팀은 그래도 일본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가 9회말 끝내기 홈런을 내주며 7-10으로 패했다.

반면 이번 대표팀은 류지현 감독이 "역대 가장 잡음없이 준비가 잘된 대표팀"이라고 자평할 만큼 선수구성에서 전력분석까지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25세 이하 선수들이 주축이기는 했지만 와일드카드를 포함하여 현재 KBO리그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선수들이 모두 합류했다. 류지현 감독은 대회 전부터 직접 현지를 찾아 일본 대표팀 선수들의 기량과 특징을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결과는 아시안게임 한일전 역사상 최악의 졸전이었다. 야구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4년 히로시마 대회 이후 '한일전 영봉패'는 사상 최초다.

한국 대표팀은 이미 일본과 '프로 최정예 1진'간의 맞대결에서도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준결승전 승리 이후로 11년간 1무 11패에 그치며 더이상 한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현역 프로 선수들도 아니고 국가대표 2.3진급도 못되는 일본 사회인 선수들에게도 완패했다는 사실은 더 큰 굴욕이 아닐수 없다.

물론 일본 사회인야구의 위상과 수준은, 한국처럼 '일반인 아마추어'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프로 경력자나 프로 지명을 꿈꾸는 선수들이 대거 활동하고 있는 무대가 일본 실업야구다. 이날 선발투수인 히구치는 다음 달 예정된 일본프로야구(NPB) 신인 드래프트에도 참가할 예정이며,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을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평가받는 실업야구 최정상급 투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전업 프로 최정예 선수들로만 구성된 한국대표팀의 창피한 졸전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대회 일본 대표팀은 3년전 항저우 대회와 달리, 아예 프로 유경험자가 전무했다. 한국전 선발 히구치의 또다른 직업은 일본의 제지회사인 오지 홀딩스의 시설부 직원으로 낮에는 청소나 물건 운반 등 회사업무를 하고, 저녁에는 야구공을 잡는 '투잡러'였다.

입사 2년차인 히구치의 연봉은 약 338만엔(한화 약 31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한 한국 프로 선수들의 1인당 평균연봉은 약 2억 2600만원이며, 24명의 연봉 총액은 54억2900만 원에 이른다.

이는 결국 KBO리그의 수준과 경쟁력을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미국 메이저리그(MLB)나 일본 NPB보다는 수준이 낮고, 대만 CPBL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다른 리그들보다 실력과 인기에 비하여 선수들의 '몸값 거품'이 유독 심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초 열린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한국은 해외파까지 포함한 최정예 전력을 꾸렸지만, 1라운드에서 대만과 일본에 연이어 패했고 8강에서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콜드게임 패배를 당하는 등 일정 수준 이상의 강팀들을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17년만의 극적인 8강 진출에 가려졌지만, 한국이 승리한 팀들은 제대로 된 프로리그를 갖추지 못한 팀들 뿐이었다.

더구나 아시안게임은 냉정히 말해 국제야구계에서는 비주류 대회에 불과하다. 프로급 선수들을 내보내는 국가는, 병역혜택이 걸린 한국을 제외하면 대만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국은 대만과의 1차전에서도 비록 5-0으로 이기기는 했지만, 20살의 실업팀 투수인 대만 선발 린이웨이(대만합작금고)에게 5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틀어막히며 경기 중반까지 상당히 고전한 바 있다. 또한 일본전에서는 선발 히구치의 구위가 워낙 뛰어났던 것도 있지만, 한국 선수들도 선구안, 컨택, 수비, 경기운영 등 투타 전반에서 '프로선수다운' 기본기와 집중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일본 실업 타자들은 한국 선발 소형준의 떨어지는 유인구에 속지않고 타선이 한 바퀴 돌자 바로 공략법을 찾아냈다. 반면 한국 프로 타자들은 린이웨이와 히구치같이 처음 상대하는 낯선 투수들의 공에 대하여 타순이 두 바퀴를 돌 때까지도 전혀 대처하지 못하며 대조를 이뤘다.

상대 투수가 유리한 카운트를 잡기 위하여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잡고 들어오는 패턴이 계속 되었음에도,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계속 소극적인 배팅으로 일관하는 등 경기중 상황대응 능력도 낙제점이었다. 이처럼 국제무대에서 가뜩이나 세계 야구강국들과의 기량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데, 이제는 실업 수준의 선수들을 상대로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게 KBO리그의 현실을 보여준다.

불행중 다행은 이번 패배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표팀이 5회 연속 AG 결승전에 오를 가능성은 높다는 것이다. 슈퍼라운드 대만이 중국에 9-1로 승리하면서 1승 1패, 일본이 2승, 중국은 2패가 됐다. 26일 한국은 중국, 일본은 대만을 각각 상대한다.

한국이 중국에 승리하고, 일본이 대만에 승리하면 한국과 일본이 결승에서 재대결을 펼치게 된다. 대만이 일본을 꺾으면 한국, 대만, 일본이 모두 2승 1패가 되어 3개팀의 팀 퀄리티 밸런스(TQB)를 따져야 한다. 여기서도 한국이 최소 2위는 확보하기 때문에 결승 상대가 대만이 된다는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결승진출에는 지장이 없다.

다만 금메달 획득 여부와 별개로 이번 한일전 대참사는 이미 한국야구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프로선수와 구단들로서는 과정이야 어찌됐든 금메달이라는 '최종 결과'가 절실하다. 그러나 정작 팬들 입장에서는 프로선수들의 합법적 병역혜택을 위한 창구로 변질되어버린 아시안게임 출전을 두고 가뜩이나 회의적인 시선이 팽배한지 오래됐다.

결국 '우승해봐야 본전'인 대회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줘도 모자랄 상황인데, 오히려 KBO리그의 수준과 국제경쟁력에 대한 불신만 더욱 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설사 대표팀이 결승전에 올라 부끄러운 금메달을 수성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대회에서 드러난 한국프로야구의 현 주소와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냉철한 진단이 필요해보이는 이유다.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