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숨고 불펜 포수의 세계, ‘있는데 없습니다, 없는데 있습니다’

프로야구 숨고 불펜 포수의 세계, ‘있는데 없습니다, 없는데 있습니다’

불펜 포수는 선수들의 최고의 경기력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던지고 받는다.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 양연수, 김지석, 이도현(왼쪽부터) 김종진 기자 kjj1761@ “오케이! 나이스!”지난달 30일 부산 사직야구장. 경기 전 관중이 입장하지 않은 고요한 경기장 1루 쪽 불펜에서 짧고 굵은 외침이 울렸다.불펜에서는 롯데...

불펜 포수는 선수들의 최고의 경기력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던지고 받는다.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 양연수, 김지석, 이도현(왼쪽부터) 김종진 기자 kjj1761@
불펜 포수는 선수들의 최고의 경기력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던지고 받는다.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 양연수, 김지석, 이도현(왼쪽부터) 김종진 기자 kjj1761@

“오케이! 나이스!”

지난달 30일 부산 사직야구장. 경기 전 관중이 입장하지 않은 고요한 경기장 1루 쪽 불펜에서 짧고 굵은 외침이 울렸다.

불펜에서는 롯데 자이언츠 선발 투수 박세웅이 힘차게 공을 뿌렸다. 25개의 공을 컨디션 점검 차원에서 가볍게 던졌지만 불펜장에는 포수의 우렁찬 감탄사가 울려 퍼졌다. 박세웅에 이어 외국인 투수 로드리게스와 비슬리도 이어 공을 던졌다. 등 번호 02번의 포수는 쉴 새 없이 앉았다 일어섰다. 한 개의 공도 빠짐 없이 포수 미트를 힘차게 내밀며 “나이스”를 외쳤다

같은 시간. 경기장 마운드에서는 등 번호 05번 투수가 공을 던졌다. 훈련용 보호 펜스 뒤에서 홈을 향해 정확히 공을 던지자 타자들의 방망이가 연신 호쾌하게 돌아갔다. 경쾌한 타격 울림에 투수의 표정은 밝아졌다. 보통의 투수는 타자의 헛스윙에 웃지만, 05번 투수는 타자의 장타에 웃고 있었다.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02번 포수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경기 도중 폭우가 쏟아졌고 폭우로 경기가 멈추자 그라운드 키퍼들과 함께 잔디 정리를 거들었다. SNS에는 “경기장 정리하는 저 선수는 누구에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투수의 공을 하루 수백 개씩 받는 불펜 포수. 좋은 타구에 웃음 짓는 배팅볼 투수. 경기 전후 선수들의 경기 환경을 만드는 훈련 보조원. 그라운드의 ‘1인 다역’인 롯데 자이언츠 05번 불펜 포수 김지석(27), 02번 안환수(25)의 삶을 들여다봤다.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 양연수, 김지석, 이도현(왼쪽부터). 김종진 기자 kjj1761@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 양연수, 김지석, 이도현(왼쪽부터). 김종진 기자 kjj1761@

■공 받기는 업무의 30%

“저희를 뭐라고 소개 해야 되죠?”

자기 소개를 해달라는 말에 갸우뚱하는 그들. 이들의 공식 명칭은 ‘훈련 보조원’이다. 주 업무가 투수들의 공을 받는 역할이기에 불펜 포수라는 명칭도 이들에게는 익숙하다. 롯데 자이언츠에는 5명의 불펜 포수가 있다. 5명이 선수들의 훈련, 선수들의 기량을 위해 1인 다역을 경기 전, 경기 중, 경기 후 동시에 맡는다.

경기가 있는 날 훈련은 경기 4시간 30분 전 시작된다. 훈련 1시간 전 불펜 포수의 하루는 시작된다. 5명이 장비를 꺼내고 배팅 케이지와 훈련 도구를 세팅한다. 훈련 준비가 끝나면 선수들이 나오고 이들은 투수를 가장 먼저 돕는다. 캐치볼을 함께하고 불펜 피칭하는 투수의 공을 받는다. 타자들에게 배팅볼까지 던지다보면 어느덧 시간은 경기 시작 전 2시간이 된다.

불펜 포수 김지석은 “불펜 포수이지만 공을 받는 일은 전체 업무의 30% 정도다”며 “훈련 준비, 훈련 정리 같은 보조 업무가 포수 역할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 안환수가 불펜 피칭 뒤 투수 제레미 비슬리와 투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 안환수가 불펜 피칭 뒤 투수 제레미 비슬리와 투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경기가 시작되면 이들은 오히려 숨을 잠시 돌린다. 선발 투수가 긴 이닝을 던진다면 휴식도 길어진다. 자칫 선발 투수가 경기 초반부터 흔들린다면 다음 투수가 몸을 풀어야 해 바로 포수 장비를 챙긴다. 하루에 공을 받는 투수는 1인당 보통 3~4명. 캐치볼과 타격 훈련까지 합치면 500번 가량 공을 던지고 받는다.

선수보다 더 많이 공을 받고 던지는 만큼 아프지 않는 것도 능력이다. 불펜 포수 안환수는 출근 전 한 시간씩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체력 관리를 한다. 그는 “한 명이 다치면 훈련 전체에 지장이 생긴다”며 “웬만하면 아픈 것도 내색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투수보다 먼저 아는 그날의 공

불펜 포수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자주 투수의 공을 보는 사람이다. 데이터에 기록되지 않는 공의 힘과 끝 움직임을 미트로 읽는다. 같은 직구도 좋은 날과 나쁜 날의 느낌이 분명히 다르다. 매일 같은 공을 받은 손에는 데이터보다 앞서는 감각이 쌓인다.

‘잘 받는 기술’도 필요하다. 공을 미트 중심에 담아 ‘퍽’하는 소리가 나며 투수는 구위에 확신을 얻는다. 투수마다 루틴과 선호하는 포구 지점이 달라 ‘맞춤형 포구’가 필요하다.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는 하루 평균 300~400개 공을 던지고 받는다. 캐치볼을 하고 있는 불펜 포수 안환수. 롯데 자이언츠 제공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는 하루 평균 300~400개 공을 던지고 받는다. 캐치볼을 하고 있는 불펜 포수 안환수. 롯데 자이언츠 제공

김지석은 투수의 공에 ‘직언’도 망설이지 않는다. “오늘은 공 끝이 풀리는 것 같다” “슬라이더는 좋다”며 구종별 느낌을 솔직히 전한다. 김지석은 “늘 좋다고만 하면 투수도 자기 공이 진짜 좋다고 착각해 무리한 승부를 할 수도 있어서 솔직하게 말한다”고 말했다.

안환수는 투수의 기를 살리는 편이다. 공 하나마다 큰 소리로 투수의 기운을 북돋는다. 실투가 오면 “홈런이다. 넘어갔다”고 장난스럽게 긴장감을 주고, 투구가 끝나면 좋았던 공과 좋지 않았던 공을 말해주려고 노력한다. 안환수는 “내가 느낀 좋은 공이 경기에서도 그대로 나오고 결과가 좋으면 뿌듯하다”고 웃어보였다.

■선수가 아니라도 야구

이들의 꿈은 프로 선수였다. 경남 김해고 포수였던 김지석은 3학년 때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프로 입단이 여의치 않았고 2019년 롯데 불펜 포수가 됐다. 8년 차 불펜 포수로 타 구단 불펜 포수와 비교해도 불펜 포수 중에서는 어느덧 고참급이 됐다. 김지석은 “불펜 포수를 하면서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로 뛰면서 보이지 않았던 야구의 여러 면모가 눈에 들어온다”며 “전력분석원 같은 야구 전체를 볼 수 있는 직업도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로 투수들의 공을 받고 있는 김지석. 롯데 자이언츠 제공
2019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불펜 포수로 투수들의 공을 받고 있는 김지석. 롯데 자이언츠 제공

부산고와 송원대에서 포수로 뛰며 프로를 꿈꿨던 안환수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2024년 롯데의 제안을 받았다. ‘평생 해 온 야구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불펜 포수 마스크를 고민 없이 썼다. 안환수는 “선수들이 야구하는 것을 보면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불펜 포수로 배우는 것이 너무 많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함께 훈련한 투수들이 성적이 나지 않을 때 마음이 가장 무겁다. 담당 투수가 흔들리면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함께 고민한다. 배팅볼을 던져준 타자가 안타를 치고, 공을 받은 투수가 호투하고 고맙다며 건네는 인사가 가장 힘이 된다. 김지석은 “주변에서 너희가 전력의 반이다, 너희가 있어야 훈련이 된다는 말을 들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지석이 처음 불펜 포수가 되던 2019년 3명이던 롯데 불펜 포수는 지금 5명으로 늘었다. ‘1인 다역’을 맡는 훈련 보조원에 대한 구단의 처우는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다. 다만 미국과 일본에서는 전문 직종으로 대우받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여전히 단순히 ‘공을 받아주는 사람’ 정도로 보는 시선이 큰 것이 사실이다.

안환수는 “불펜 포수를 롯데의 우승을 위해 일하는 팀의 구성원으로 생각해주시면 좋겠다”며 “롯데가 우승하는 순간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드넓은 야구장에서 관중의 시선은 투수와 타자를 좇는다. 화려하고 뜨거운 선수들의 활약을 위해 불펜 포수는 매일 500번 미트를 열고 공을 던진다. 비가 쏟아지면 잔디를 정리하고 경기 전후 살뜰히 그라운드를 챙긴다. 기록에는 남지 않는 야구장의 ‘팔방미인’ 이들의 시즌은 오늘도 계속된다.

출처: 부산일보